[칼럼]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예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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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섭(장의사)

 

제가 근무하는 장례식장에는 평생(50년)을 장의사로 일하시다 은퇴하신 분이 계십니다. 몇 년 전 그분과 함께 일할 때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장례식에 오는 사람 특히 여인들은 더욱 예쁜 것 같다”고 하였더니 그 분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동의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느껴질까요?

먼저 단어의 정의를 내리면 합니다. 아름답다는 영어로 Beautiful, 가시적인 판단으로 눈을 앗아 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예쁘다라는 말은 Charming, 즉 나의 마음을 앗아가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키가 작을 수도 있고 얼굴은 의사의 도움 받지 않은 자연인 그대로이지만 얼굴에서 나타나는 순수한 모습이 예쁘게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참고: 얼굴은 순수 한국말로써 얼의 꼴이 얼굴로 변천하였다고 합니다)

사별을 고하는 장례식장에 오면서 파티에 가듯이 치장과 화장을 하고 오지 않습니다. 가슴엔 슬픔을 가득 담고 눈은 눈물로 채운 맨 얼굴들이 예뻐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0대일 수도 있고 30대 혹은 50대 일수도 있습니다.

요즈음 존 브래드쇼(John Beadshaw)가 쓴 가족’이라는 책을 읽으며 유추해 봅니다. 저자 브래드쇼는 신학과 심리학, 영성 분야의 학자이며 가족치료사 그리고 내면아이 치료사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 모든 사람들은 출생하여 자라면서 합당한 보호와 양육을 받지 못하면 상처를 입으며 생존하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자신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사람들의 내면에는 성장이 멈춘 어린아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수를 더해가며 성인이 되어가지만 심리적으로 성장이 멈춘 사람들을 성인아이라고 칭합니다. 성인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때를 봅니다. 그 모습은 그 사람 속에 내재하는 아이가 무의식 속에 그 환경을 인지하고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정신 없이 재미있게 놀다가 엄마나 아버지 양육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우는 모습을 보면 동정심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예뻐 보이기도 합니다. 때 묻지 않은 모습. 긴장되지 않은 자연인의 모습인 같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얼굴들은 순수한 순리의 시간과 에덴에 돌아온 모습들입니다. 그 곳에는 사회적 지위도 없고 생존을 위한 방어도 긴장도 없습니다. 자식이고 가족일 뿐입니다. 영혼의 감정만이 나타나는 시간과 장소입니다. 나이가 중년이고 주름이 잡히는 나이일지라도 사별을 맞는 가족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고 당황해 하고 우는 모습과 같을 수 있습니다. 눈물은 긴장을 완화 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얼마나 긴장 속에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자연인으로 돌아오고 얼의 꼴을 눈물로 씻을 때 나타나는 얼굴은 더욱 예뻐지나 봅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 가슴으로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