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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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섭(장의사/시카고)

사망증명서를 작성할 때 다음과 같은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망자의 이름으로 시작하여 거주한 주소와 생년월일, 사망일, 출생지, 군복무 여부, 평소에 일한 직업, 학력, 생 부모의 이름 그리고 하관되는 묘지명, 만약 화장을 한다면 이행하는 하는 화장장 이름 등등. 이 모든 서류는 장의사가 가족들로 부터 받아 작성한다. 죽음이 자연사이거나 병사이면 평소에 진료한 주치의가 사인을 밝히지만 사고사 혹은 의문사이면 정부의 검시관이 판명한다. 상담을 할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이름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름이 요구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이름은 할머니이고 할아버지의 이름은 할아버지였기에 본명을 모르는 경우가 거의 다 이다. 그리고 그들은 알아야 했을 사실을 모르는 양 미안해 한다.

며칠 전 70대 중반의 한 가장을 만났다. 본인은 집안의 장손이지만 외동아들이 여기 시카고에서 손자들과 살기에 여기서 살고 가끔 한국에 간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만들어 온 족보 도표를 보여 주셨다. 시조로 부터 본인 34대에 이르기 까지 잘 작성되었고 본인을 기준하여 위 4대 고조부까지는 더욱 상세히 기록되었다. 본인은 선조의 제사를 지내고 있기에 여기에 있는 아이에게 가르쳐 줄려고 상 차리는 법과 절하는 법을 상세히 그림 책으로 만들어 왔다고 했다. 이분은 불자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시카고의 서북 교외에 위치하고 아직 동포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묘지에 가면 한 가족 묘지를 형성하고 집안의 성씨와 본관, 안장되어 있는 고인들의  이름과 짧은 역사가 큰 비석에 세겨져 있다. 이민 초기 상을 당하면서 족보에 대한 생각이 깊은 분이 준비하신 것 같다. 한국의 비석을 보면 많은 글들이 세겨져 있다. 그 장례 문화 풍습을 이어가는 가족이라 생각된다. 가족 묘를 많이 준비해 두시고 비석을 크게 세우신 분이라면 집안에 잘 만들어 진 족보 책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1960년 케네디 대통령의 미국 이민 정책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 한국인들의 미국 이민도 60년이고 두 세대를 지난다. 이민 온 우리를 1세대로 칭한다면 여기서 출생한 2세들이 자식들을 낳아 3세들이 미국인으로 학교에 다닌다.  수 년 전 이민의 연수를 더해가며 2세들이 겪는 정체성에 대하여 신문에서 많이 기사화하고 화두로 삼았었는데 요사이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해결되어서 일까?
친 조부, 외조부의 이름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때가 있다. 조상들의 이름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교회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부모로 부터 교육 받아야 할 사항중의 하나이다.

기독교 성경에서 구약은 유대인 민족의 역사이다. 거룩한 책(성경) 혹은 진리의 말씀이라는 종교적인 중압감에서 벗어나 하나의 역사책으로 읽어도 참 재미있고 배울 것이 많은 책이다. 신약성경의 첫 책 마태복음은 그들의 족보를 소개하며 조상들을 나열한다. 여기에 천년 이상 수 십 세대에 걸쳐 나타나는 인물들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자세히 소설처럼 기록한 것이 구약성경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는 이래의 앞날을 가르쳐 준다. 성경 책의 시작과 전개에서 창조주 하나님과의 대화가 자주 나온다. 하나님은 증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할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요셉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며 역사속에 존제하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들의 후손들은 조상의 이름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주신다. ‘이제 너희들이 잘 살 수 있는 약속의 땅에 가서 살 때에 나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과 한 약속을 지켰고 과거 가난과 억압과 종 살이에서 너희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 여호와가 구해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편하게 잘 먹고 잘 살게 되어다고  현실만 바라보며 역사를 망각하지는  말아라. 이 사실을 너희의 자녀들에게 항상 부지런히 가르쳐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신명기의 내용이다. 요즈음 신명기를 필사하며 받는 은혜가 많다.

잎만 바라보며 바쁘게 살아온 이민 생활 잠시 쉬어 갈 시간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었인지? 둘러보면 좋겠다. 최소한 우리가 미국으로 이민 온 근본적인 동기와 힘들게 살아 온 초기의 외국생활을 알려주고 우리 부모님의 이름들을 자식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