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807

김영문 목사(시카고 나눔교회 담임)

한사람이 밀알이 되어 썩어질때 많은 열매들이 나오게 된다. 그 대표적인 선교사중에 한분이 왈터 V. 존슨 선교사(Johnson, Walter Virgil, 1874-1903)이다. 존슨은 미국 미주리에서 1874년 8월30일 태어나고 미주리에 있는 오번 신학교에서 졸업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미주리 주에서 보냈다. 성장과 학업, 사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삶이 미주리 지역를 떠나지 않했다. 신학교를 졸업후 1년반정도 목회생활을 하다가 그의 안내 에밀리와 함께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들어본적도 없는 한국 선교를 자원하게 된다. 안따깝게도 그의 아내 에밀리는 조선에 들어 오기전 항해 도중에 귓병을(化膿, Abscess)앓게 되어 일본을 경유하여 수술을 받았지만 귀에서 생긴 병균이 뇌로 급속도로 퍼져서 27세 나이로 일본 고베에서 소천하게 된다. 동반자였던 에밀리의 죽음은 존슨 선교사에게는 큰 충격과 상실감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그의 아내를 일본 고베에 묻고 준비했던 한국 선교를 위해 서울에 도착했다. 그런데 왈터 존슨 선교사도 한달정도 선교사 준비 사역을 준비 하다가 천연두로 인하여 29세 젊은 나이로 주님 품에 안겼다. 그는 가진것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직 선교사 사명을 바라보며 조선땅에 건너와서 이름도 빛도 없이 무명으로 살다가 이국땅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다른 선교사처럼 선교의 업적은 없지만 조선을 사랑하고 헌신을 보면서 선교사 후보생들이나 오늘 이시대에 새로운 도전을 주었다. 1898년 한국의 선교사역에 대한 미국 북장로교회의 보고서에 기록된 편지를 보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그 힘과 범위에 있어 결코 줄어들지 안았다. 오히려 그의 복된 에너지가 보다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다. 복음의 효과가 지속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이고 빠르게 그리스도를 믿지않는 자 안에서 보여지고 있으며 한국인의 많은 고백자들의 삶의 급진적인 변화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표식이다. 그들의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의 성장은 분명하며 그들 모두는 예수의 함께 하시는 능력과 그의 이야기와 사랑을 신선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 내용은 북 장로교의 당시 선교사역에 성령의 역사가 있음을 보고한 내용이다. 왈터 선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에서 선교 사역하던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본국의 교회에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 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왈터와 에밀리 죽음 이후에도 많은 선교사를 집중적으로 한국에 파송하게 되었다. 그후 한국교회는 1907년에 평양 대부흥을 경험하게 된다. 왈터 부부는 한국에 와서 짧은 기간의 선교 사역이었지만 조선땅 선교와 주를 위한 헌신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존슨 선교사 묘비에는 “Faithful unto death. (죽도록 충성을 다 하였느니라)라는 문구가 있다. 짧은 기간 선교 사역자로 그를 기억하거나 아는 이가 별로 없지만 그의피는 이땅에 많은 선교사를 불러들이는데 큰 공로자이다. 결국 그는 실패자 선교사가 아니다. 마치 토마스 선교사가 조선에 선교사로 와서 육지에 발을 내딛기전에 순교를 당했지만 선교역사에 높게 평가 하듯이 왈터 선교사의 죽음은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선교사요 사명자이다.

참고문헌 : 양화진 선교사들의 삶과 선교, 양화진 선교회 선교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