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대통령·사형선고·사면···영욕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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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 9월1일 제11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대표와 손을 맞들고 있다. 1995년 검찰 소환을 받고 자택 앞 골목에서 대국민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1996년 8월 내란죄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

전두환 전 대통령 성장에서 별세까지
경남 합천 출생, 대구서 성장, 육사 11기 졸업
군에서 승승장구, 12·12사태 거쳐 대통령까지
퇴임 후 내란죄 등 구속 기소···YS 특별사면

한국시간 23일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90년 생애는 그야말로 영욕의 세월이었다. 육사 출신으로 군 요직을 섭렵한 뒤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씨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했으며 7년 간 대통령으로 최고의 권력을 누렸으나 퇴임 후 내란과 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특별사면으로 석방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생을 보내다 결국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5세 대구로 이주, 대구공업고·육군사관학교 11기를 졸업했다. 6·25 전쟁에 참전했으며, 1959년 미 육군 특수전, 심리전 교육을 수료했다.

1979년 3월 육군본부 보안사령관이 됐으며, 10·26사태 후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을 수사했고, 1979년 12·12사태로 군부 실세가 됐다.

1980년 중앙정보부 서리직을 겸직했으며 학생 시위가 거세지자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발동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압을 주도, 5월 27일에는 국보위를 조직하고 상임위원장이 됐다.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한 후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11대 대통령이 된 전 전 대통령은 1981년 7년 단임 대통령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을 통과시킨 후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 자리에 오르며 제5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7년 임기 동안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을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 성장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임기 말, 1987년 터진 박종철 고문치사 이후 직선제를 요구하는 이른바 6월항쟁이 시작됐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했다.

1988년 임기를 마친 전 전 대통령은 1995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구속기소됐고, 내란죄 및 살인, 뇌물수수 등으로 1심에서 사형을,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고, 이듬해 복권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지 불과 28일 만에 세상을 떴다. 60여년에 걸쳐 평생 떼려야 뗄 수 없는 길고도 질긴 인연을 맺었던 두 전직 대통령이 불과 한 달이 채 안 되는 간격으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두 사람은 동료로 출발했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전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아 최고통치자가 됐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전씨는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 후계자’로 지명해 권력의 바통을 넘겨줬다.

전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1959년 김옥숙 여사와 결혼할 때 사회를 봐줄 정도로 노 전 대통령과 돈독한 사이였다. 전 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을 지냈고, 이 자리를 노 전 대통령이 이어받았다.

전 전 대통령이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으로 12·12 쿠데타를 주도해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노 전 대통령에게 군을 떠나 전두환 정권에 합류할 것을 권고했고,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따랐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무한 신임하며 그를 13대 대통령으로 사실상 이끌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면서 돈독하던 둘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고, 전씨 측이 백담사를 택했다.

두 사람은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 등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5년 11월 16일과 같은 해 12월 3일 나란히 구속돼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2월 당시 임기 말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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