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풀이] 喪家之狗(상가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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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두표/시카고문인회

상가 집의 개란 뜻인데, 초상(初喪)을 당한 집에서 주인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버려져 굶주리고 있는 개처럼 대접을 받지 못해 초췌한 행색의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처럼 천대받은 사람을 비유로 마치 ‘상가 집 개 같다.’고 한데서 유래 했는데, 공자(孔子)는 노(魯)나라 사람으로(B.C 552- 479 73세) 그는 51세(B.C 501)때, 대사구(大司寇), 55세에 재상(宰相)에 올랐는데,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부정부패(不正腐敗)를 척결(剔抉)하는 정책을 실시하여, 당시 권력자인 소정묘(少正卯)가 횡포를 부리자 그를 잡아다가 주살(誅殺)시켜 버렸다. 또 왕족(王族)들이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나서는 바람에 몇 번이고 충돌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야인(野人)으로 돌아와 버렸다. 공자는 10여명의 제자들과 함께 노나라를 떠났는데 이때 공자의 나이 50대 후반으로 이제부터는 정치에서 떠나 백성들을 위한 유세강연(遊說講演)과 후진양성을 위해 일을 할 때라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노나라를 떠나 위(衛), 조(曹), 송(宋), 정(鄭), 진(陳), 채(蔡) 등의 여러 나라로 돌아다니며 자신의 의(義)와 인(仁)의 사상을 만천하에 펴보려고 먼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는 가는 곳마다 핍박이 심하여 유세여행(遊說旅行)은 고생스럽기 그지없었는데, 더구나 정(鄭)나라에 갔을 때에는 따라오던 제자들까지 잃어버려서 오도 가도 못할 형편에 이르렀다. 할 수 없이 어느 성곽(城郭)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굶주린 배를 움켜잡은 채 제자들이 찾아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제자인 자공(子貢)이 지나가는 선비에게 ‘나는 지금 스승님을 찾고 있는데, 혹시 70객 노인이 지나가는 것을 못 보셨습니까?’ 그러자 그는 비웃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저쪽 성곽 모퉁이에 못 보던 70객 늙은이가 앉아있던데, 혹시 그 늙은이가 당신의 스승인지 모르겠소이다.’ ‘어떻게 생긴 분이었습니까?’ ‘모습은 초라하고 몹시 지쳐있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얼굴은 성인군자(聖人君子) 같았고 그 옆모습은 얼도(臬陶=순(舜)임금 때 명재상)와 비슷하였고, 그 뒷모습은 자산(子産=정(鄭)나라 명재상)과 흡사합디다. 그러나 그들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 노인은 풀이 죽어서 축 늘어져 있는 품이 마치 상가 집 개와 같은 몰골입디다.’ <자공>은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과연 성곽 모퉁이에 상가 집 개처럼 풀기 없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사람은 스승인 공자가 틀림없었다. <자공>은 기뻐하며 조금 전 선비에게 들은 얘기를 전하자 공자는 ‘다른 말들은 모두가 나에게 과분한 말이었지만, 나를 두고 상가 집 개와 같다고 말한 것만은 과연 옳은 말이었다.’ 이와 같은 일화가 널리 알려지자, 그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공자를 <상가 집 개>라는 별명으로 부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나오는 말로서 화를 내기보다도 웃으면서 나를 두고 정말 그럴듯한 표현이다. 사실 그 말대로 맞는 말이니까 말이야. 하며 과연 군자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금의 우리의 현실 시대는 권력을 잡았다고 마구 휘두르며 부정부패(不正腐敗)를 마구 저지르고 마음껏 사욕(私慾)을 채웠던 정치인이 그 자리에서 쫓겨나면 어느 날 상가 집 개(喪家之狗)처럼 처량한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