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 알아두면 유용한 식품상식] – 팝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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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은 TV를 볼때 혹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때 빼놓을 수 없는 음식.
팝콘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팝콘은 보통의 납작한 정육면체에 가까운
모양을 가진 일반 옥수수 종자들과는 다르게 대체로 알갱이가 작고 모양도
물방울처럼 동그랗습니다. 유난히 더 질기고 밀도도 높은 셀룰로스 섬유질의 껍질
덕분에 180도까지 버티다가 터져서 몸집을 몇 배로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근현대에 이르러 팝콘이 오늘날과 같은 영화관 음식으로 자리 잡을 기회를 잡은 건
19세기 초입니다. 고래를 잡으려고 칠레까지 내려온 미국인들이 작고 귀엽다는
이유로 팝콘 옥수수를 챙겨 본국으로 돌아갔고, 이후 뉴잉글랜드 지방을 필두로 미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해 서커스나 박람회 등 당시 미국인들의 여가를
책임졌던 장소 곳곳을 파고들었습니다. 팝콘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국민
간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이동식 팝콘 튀김기의 등장 덕분이었습니다.
원래 팝콘은 냄비에 담아 불에 올려 손으로 직접 튀겨 팔았는데 1885년 발명가
찰스 크레이터가 증기를 쓰는 이동식 팝콘 튀김기를 출시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푸드카트를 닮은 튀김기는 이동이 편했으며, 많은 양의
기름이나 식기가 필요하지 않고 조리 시간마저 짧은 장점이 팝콘의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이처럼 팝콘이 본격적인 여흥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단 한
군데의 예외가 있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영화관이었습니다. 유성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 영화관은 소위 상류계층의 여가 수단이었습니다. 대사가 간간이
등장하는 자막으로만 제공되었으므로 식자층만이 영화를 누릴 수 있었으니, 이에
발맞춰 영화관은 연극이나 오페라 같은 실연 무대를 위한 극장을 그대로 옮겨
구축하고 꾸민 공간이었습니다. 붉은 카펫과 금박 장식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팝콘이 낄 자리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1927년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제 대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식자층이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영화가 오늘날처럼 좀 더 대중스러운 여가
수단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자 국민 간식이었던
팝콘을 파는 장사꾼들이 영화관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영화관에 진출한
팝콘의 입지는 역사적 대사건을 계기로 대폭 넓어졌는데, 바로 대공황 때문입니다.
대공황으로 인해 일자리가 없어지는 힘든 나날이 이어지자 사람들이 당시로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극장으로 몰려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으며,
팝콘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으니 먹는 이도 부담이 없었을 뿐더러, 옥수수
10달러어치를 몇 년 두고 쓸 수 있을 만큼 파는 이에게도 부담이 없었습니다. 이에
극장에서는 드디어 현실을 파악하고 팝콘의 존재를 인정하며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아예 직접 판매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러한 팝콘의 기세는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위기를 맞이합니다. TV의 등장 탓에 극장으로 향했던 발걸음을 줄이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팝콘 또한 덜 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팝콘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인디애나주 라포르테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프레데릭 C. 메넨이
1958년 발명한 JIPPY POP은 은박지 용기에 팝콘을 담아 그대로 불에 올려
가열하면 포장이 부풀어 오르며 튀겨지는 제품을 개발한 것입니다. 이후 오늘날
즉석 팝콘하면 떠오르는 전자레인지 팝콘은 사실 전자레인지 자체와 함께
등장했습니다. 1945년 레이다 제작 업체 레이시온사의 직원인 퍼시 스펜서가
팝콘용 옥수수를 가지고 기계에 실험을 하자 튀겨진 팝콘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실험을 바탕으로 결국 세계 최초의 전자레인지인 레이다레인지가 등장했습니다.
이후 그는 1949년 극초단파로 팝콘 튀기는 법의 특허를 출원하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우리가 간편하게 즐겨 먹을 수 있는 팝콘 제품이 나오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