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장 지혜롭게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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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경구입니다. 이 말은 고대 로마 제국시대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수많은 군중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로마시의 거리에서 개선행렬을 할 때 사용되던 말이라고 합니다. 개선장군의 뒤에는 그의 노예가 따르고 있었는데, 그 노예의 역할은 ‘Memento Mori’를 거듭 외침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만하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제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였습니다. 참 엄숙하고 지혜로운 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세 수도사들의 인사말도 언제나 ‘메멘토 모리‘였습니다. 얼마 전에 소천하신 이어령 전 장관의 좌우명도 ‘메멘토 모리’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사람을 한정된 시간 안에 두셨습니다. 사람은 모두 생의 마지막 날이 있음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직면하게 되는 시간의 한계, 시간의 절벽은 결코 슬퍼해야만 할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시간의 절벽 앞에서 피조물인 자신의 존재와 대면 할 수 있고 창조주 하나님께 진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피 할 수없는 시간의 구도 속에서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그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섭리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가 행한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평가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기억해야되겠습니다. ‘메멘토 모리’, 성경 전도서의 기자는 ‘무너져 가는 집’의 은유를 통해 신앙인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무너져 가는 집’ 즉, 육체적으로 쇠퇴와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음을 잘 묘사 해주고 있습니다(전12:3-8). 하지만 늙음과 죽음을 맞는 마음의 자세에는 하나님을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늙음과 죽음은 자신의 존재의 끝입니다. 점점 더 가까워지고있는 생의 끝, 생의 소멸의 증상으로 인해 낙심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늙음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 확인해 보면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5:1). 성도는 무너져 가는 육신의 장막으로 인해 낙심하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고 나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즉 ‘부활의 몸’이 덧입혀 질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무너져가는 장막의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다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소서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0-12)라 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착각 속에 삽니다. 풍요와 권력과 명예와 성공의 한 가운데 있을 때 젊음과 사랑과 행복에 쌓여 있을 때 마치 그것들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메멘토 모리의 깨우침의 순간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가장 지혜롭게 사는 사람은 늘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죽음 너머의 천국과 영생, 심판과 지옥을 기억하며 오늘 주어진 짧은 인생동안에 영원을 위해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 재능과 직분, 건강을 주어진 시간에 나 자신만을 위해 먹고, 쓰고, 마음껏 즐기는 삶이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 사랑으로 나누고 베풀며 섬기는 삶을 통하여 천국의 영원한 영광과 상급을 위해 투자하는 지혜의 마음을 얻어야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