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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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성경에는 영원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500번 이상 나옵니다.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3:11).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날 누군가에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먼 친척이라는 사람이 내게 엄청난 유산을 남겼으니 수령하라고 하는 생각지도 못해 본 메일을 받았습니다. 나와 같은 이름이 많은데 그 중에서 당첨되었다는 것입니다. 잠시 떨리고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사기였습니다. 미국에서는 부자가 자녀 없이 죽으면서 먼 친척에게 유산을 남기고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상속자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부자가 됩니다. 지금 그런 일이 나에게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엄청난 신분의 변화. 상상만으로도 즐거울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엄청난 신분의 변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존재이며 어느 갑부의 유산보다 더 큰 유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 유산은 세상의 큰 갑부의 유산이 먼 친척에게 주어지는 것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유산입니다. 큰 돈을 받게 해 주겠다는 그 사람은 사기 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런 사기에도 마음이 “혹여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매사에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과 유산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이라는 엄청난 유산도 사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먼저 보편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이 이미 기독교(영원한 유산의 상속자가 됨)를 믿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는 아주 소수의 사람이 믿었습니다. 그 때는 믿음을 갖는 것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의 절대다수의 사람이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기 당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역사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믿음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것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필요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역사에서 이 믿음이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합리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유산에 대한 약속은 단언컨대 가장 합리적입니다. 기독교는 매우 객관적인 학문의 영역에서도 합리성이 많이 논증되었습니다. 가장 많은 논문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셋째, 실제성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유산을 위해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드려 그 말씀에 따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많이 힘들어도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면서도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하셨지만 누구도 그 분을 정신병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분은 이 땅에서 이 믿음을 위해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라도 이득을 취하신 것이 없고 오직 주기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기까지 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셔서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믿을 수 있도록 역사 속에 가장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에 대해 생각을 심어 주시고 그것을 사모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참된 복을 모르고 지극히 일시적이고 작은 것에 목매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인이 행복한 이유는 자신들이 영원한 복을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영원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루 하루는 영원한 삶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을 생각하고 말씀에 따라 영원한 가치를 구분하며 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영원하고 귀합니다. 이 땅에서의 지극히 적은 시간들이 아쉽습니다. 그 시간들이 소중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면서 오늘 짧은 이 땅의 삶을 더욱더 충실하게 살기 위해 힘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