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지역의 의료 서비스 수급 불균형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문의 진료를 위해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황당한 사태가 속출하면서, 효율성만을 강조해온 병원 통폐합 정책과 시장 중심의 의료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NBC 5 Responds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카고 시민 1,178명 중 76%가 전문의 예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에지워터에 거주하는 아니타 마크 씨의 사례는 현 의료 시스템의 파산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경과 진료를 예약하려던 그녀가 받은 확답은 ‘2027년 3월’이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에게 1년 뒤에 오라는 통보는 사실상 의료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
이러한 ‘예약 대란’의 근본 원인으로는 대형 병원 체인들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이 지목된다. 시카고의 의료 시장은 최근 수년간 노스웨스턴, 어드보케이트 등 거대 의료 시스템 위주로 재편되었다. 이들은 경영 효율화를 명분으로 중소 지역 병원들을 흡수해 왔으나, 이는 곧 환자의 선택권 제한과 특정 대형 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으로 이어졌다.
수익성이 낮은 지역 진료소를 폐쇄하고 인력을 본원으로 집중시키는 시장 논리는 ‘의료 사막화’를 가속화했다. 이를 견제해야 할 일리노이 보건 시설 및 서비스 검토 위원회(HFSRB)는 지역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형 병원의 인수와 폐쇄를 묵인 및 승인하며 공공 의료의 안전망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 같은 시카고의 현실은 전 국민 건강보험 시스템을 기반으로 높은 접근성을 유지해온 한국의 사례와 비교할 때 그 결함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의료보험법을 제정하며 기틀을 마련하고 1989년 노태우 대통령 때 전국민 의료보험이 완성되었다. 결과적으로 국가 주도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통해 의료 기관의 문턱을 낮추고, 환자가 원하는 시기에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접근성’을 의료 정책의 최우선 가치로 두어 왔다.
시스템적으로 ‘전문의 진료에 수개월 이상 소요’되는 미국식 예약 대란은 한국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는 민간 보험사와 거대 의료 자본의 협상력에 의존하는 일리노이식의 시장 논리가 시민의 건강권이라는 공공 가치를 실현하는 데 얼마나 취약한지를 방증한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대기 시간 연장이 단순한 의사 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정책적 관리 실패에 따른 ‘분배의 오류’라고 지적한다. 대형 병원 위주의 독점 체제를 규제하고 지역 사회 1차 의료 기관을 활성화하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일리노이가 실행 중인 의료 시스템은 환자를 ‘시민’이 아닌 ‘순번 대기자’로 전락시켰다. 2027년이라는 예약 날짜는 일리노이주 의료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자본의 효율’이 아닌 ‘사람의 생명’에 있어야 함을 경고하고 있다. 공공성 회복을 위한 과감한 정책 수정 없이는 시카고 시민들의 ‘의료 난민’ 신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김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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