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채플린 인턴 수업중에 가끔 외부 강사들이 와서 자신의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준다. 한번은 오랫동안 채플린을 하다가 지금은 근처 지역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시는 여자 목사님께서 오셔서 강의를 해주셨다. 신앙의 배경과 채플린 사역이 목회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채플린 사역과 목회 사역의 장단점 비교, 왜 채플린 사역을 그만두고 목회를 선택했는지, 그러면서 목회를 어떻게 하고 계신지를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단어인 경계선(Boundary: 영역, 경계, 테두리)에 대해 설명하셨다. 경계선은 자신의 활동 영역을 뜻하는데, 경계선을 통해 목회를 건강하고 재미있게 유지하는 하고 있다고 했다. 그분이 설정한 경계선은, “퇴근시간 이후에는 전화를 안받는다. 교인들과의 상담은 미리 약속을 정해서 만난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영성을 위해 토요일과 주일에는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다. 휴가기간 중에는 비상 상황이 발생해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교역자와 평신도 지도자들 중심으로 일을 해결한다. 담임목회자 중심의 의존형 목회가 아닌 훈련된 교인들 스스로 영적인 성숙과 함께 교회 사역을 함께 감당하도록 돕는다.” 등이다. 한인교회 목회 현장에서는 보기 힘든 경우 있지만, 경계선을 정해놓은 사역이 더 즐겁고 건강한 목회를 만든다는 것에 공감하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 그래서 오늘은 경계선(Boundary)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숲이 울창한 아프리카 초원에서 숫사자나 동물들이 자신의 소변으로 자기의 영역을 표시하는 장면을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를 지표 삼아 다른 수컷들로부터 자신과 가족의 생존 공간을 지키려는 경계선의 표시이다. 동물에게 경계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가지고 있긴 한 걸까? 많은 사람들이 ‘NO!’라고 말할 줄 몰라서 어려움을 겪는다. 마음 약해서, 그놈의 정 때문에, 혹 자신이 이기적이라 비난 받을까 두려워 ‘NO!’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다 정작 중요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남의 일을 열심히 봐주고 다니지만 정작 자기 가족에겐 소홀하고, 배우자를 감싸 안지 못해 위기를 겪고, 가정이 깨어지기도 한다. 남들의 부탁을 거절 못해 늘 숨 가쁘게 “바빠, 바빠” 하면서 자기발전을 위한 시간이 없다고 한숨을 쉰다. 그런 사람을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얌체족도 있다. 모호한 경계는 자신이나 타인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은 자기 경계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어 남의 경계선을 멋대로 침범하기도 한다. 오지랖이 넓다고나 할까.
경계선(boundaries)은 말 그대로 경계다. 물리적인 경계선이 있는 것처럼 나와 타인 사이에도 경계선을 지음으로써 나를 규정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를 명확히 밝혀준다. ‘내가 무엇을 가져야 하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인식하게 한다. 경계선을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신체적 경계선”은 우리가 누구와 접촉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상황 아래 처하게 될 것인지 결정하도록 도와준다.” “정신적 경계선”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보유하는 자유를 부여해준다. “감정적 경계선”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며 유해하고 교묘한 다른 사람들의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이끌어준다. “영적인 경계선”은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의지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고 창조주에 대한 경외심을 새롭게 환기시켜준다. 명확한 경계선을 세우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경계선은 자신의 삶의 영역을 지키는 구분선이자 “내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지 규명해주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 인간 관계에서 건전한 경계선은 정말 중요하다. 개인적인 공간, ‘나’의 경계선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경계선을 세우지 못해 허비한 세월이 얼마런가? 그랬다면! 내 인생의 항로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오늘은 “NO!”라고 말할까? 책 <NO! 라고 말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헨리 클라우드 지음)을 통해 자기성찰과 깨달음을 얻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