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얼룩진 주말···2건의 총기난사로 30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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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발생한 텍사스주 앨패소 총기난사사건의 범인 패트릭 크루시어스가 소총을 들고 매장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이후 그는 무차별 총격을 가해 수십명의 사상자를 냈다.[KTSM 9]

4일 새벽 발생한 오하이오주 데이튼 총기난사사건 현장에 주민들이 대피하면서 벗겨진 신발들이 널브러져 있다.[AP]
3~4일 텍사스주 앨패소·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 잇따라 무차별 총격

트럼프 반이민 정책 비판 커져

텍사스주 국경도시 엘패소의 한 월마트 매장에서 3일 오전,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져 최소 20명이 숨지고 26명이 다쳤다. 이튿날 새벽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도 총격사건이 일어나 용의자를 포함해 10명이 사망하고 최소 16명이 부상당했다. 지난달 27, 28일 뉴욕시와 캘리포니아주 길로이의 지역행사도중 총격사건이 각각 발생한지 불과 일주일 만에 또다시 평온한 주말 일상이 난데없는 총성과 함께 악몽의 순간으로 변한 것이다. 특히 엘패소 참사의 경우 최근 30년간 벌어진 미국내 역대 총격사건들 가운데 일곱번째로 사망자수가 많은 데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급격히 확산된 반 이민 정서와 인종주의가 유발한‘증오 범죄’로 보인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미 민주당 일각에선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책임을 묻는 비판마저 나오는 분위기다.

■텍사스주 앨패소 월마트 총격사건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언론들에 따르면, 멕시코와 접한 대표적 국경도시인 엘패소의 한 대형 샤핑몰내 월마트매장에서 이날 오전 10시40분쯤 총격이 시작됐다. 목격자인 마누엘 우루처투(20)는 긴 소총을 든 용의자 모습을 봤다면서 “도망치던 순간, 바닥에 시신 2구가 쓰러져 있었다. 아이와 노인 모두 충격에 빠져 비명을 질렀고, 생후 6~8개월쯤된 아기의 배도 피로 범벅이 돼 있었다”고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현지 주민 바네사 사엔스(37)는 “총격범은 검은색 티셔츠, 귀마개를 착용하고 무작위로 총을 쐈다”고 말했다.

용의자는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자 별다른 저항없이 순순히 체포됐다. 그레그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는 사건 발생 7시간후 “20명이사망하고, 26명이 다쳤다”고 공식 발표했다. NYT는 이날 참극을 ‘대량학살’(massacre)이라고 규정했다. 사상자중에는 멕시코인 9명(3명 사망, 6명 부상)도 포함됐는데, WP는 “부상자 명단에는 10세의 멕시코 소녀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 외교부는“우리 국민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주목할 대목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무차별 총기난사라기보다는 이민자들, 특히 히스패닉계를 타깃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범인인 백인 남성 패트릭 크루시어스(21)가 범행에 앞서 온라인 커뮤니티 ‘에이트챈’(8chan)에 올린 4쪽짜리 성명서에는 이번 총격이 ‘히스패닉의 텍사스 침공’에 대한 대응이라는 주장이 담겼다. 성명에서 그는 “히스패닉이 내가 사랑하는 텍사스 주정부와 지방정부를 장악할 것이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꿀 것”이라고 노골적인 반감을 표출했다. 아울러 유럽인들의 후손이 다른 인종에 압도당하고 있다는 백인우월주의 음모론인 ‘대전환’(The Great Replacement)도 언급했고, 지난 3월 51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총격 테러범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레그 앨런 엘패소 경찰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증오 범죄와의 연계성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이날 참사를 ‘끔찍한 총격’이라고 표현한 뒤 “비극적일 뿐 아니라 비겁한 행동”이라고 비난하면서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결과적으로 이 같은 ‘증오 범죄’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면하긴 힘들어 보인다. 민주당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베토 오로크 전 연방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주의적 수사(rhetoric)가 폭력을 유발한다면서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이며, 그가 이 나라의 인종차별주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하이오주 데이튼 총격사건

앨패소 사건이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4일 새벽 1시쯤에는 오하이오주 데이튼의 오리건 지구에서 또다시 26명의 사상자를 낳은 총격사건이 일어났다. 데이튼 경찰은 트위터를 통해 오전 1시에 오리건 지구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으며 피해자 9명이 숨졌고 용의자도 사망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한 총격 사건 발생 후 인근 경찰관들을 보내 대응했다면서, 연방수사국(FBI)도 현장에서 수사를 돕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사살된 것으로 알려진 용의자의 신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1명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범행 동기 등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용의자는 장총을 사용했고 여러 발의 총탄을 발사했다고 현지 경찰은 밝혔다.

데이튼 경찰 관계자는 현지 매체인 데이턴 데일리 뉴스에 “총격 사건은 아주 짧은 시간에 마무리됐다. 근처에 정기 순찰을 하던 경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만다행”라고 말했다. 부상자들이 후송된 마이애미 밸리 병원의 테리아 리틀 대변인은 16명의 피해자가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확인했지만, 그들의 상태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케터링 헬스 네트워크의 엘리자베스 롱 대변인도 총격 사건으로 다수의 피해자가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인원은 공개하지 않았다. 데이턴은 오하이오주 서부에 있는 인구 14만명의 작은 도시다. 총격 사건이 발생한 오리건 지구는 술집과 식당, 극장 등이 많은 데이튼 중심가에 있다. 총격 사건은 오리건 지구 이스트 5번가 400블록에서 발생했다. 로이터통신은 현지 매체를 인용해 총격 사건이 ‘네드 페퍼스 바'(Ned Peppers Bar)라고 불리는 시설 혹은 그 근처에서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 술집 옆에 있는 건물 경비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제프라는 남성은 20피트(약 6m) 거리에서 용의자의 총구에서 나오는 불꽃을 봤다며 “그가 우리 도시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데이튼 경찰은 현지 컨벤션센터에 피해자 가족 및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주민을 위한 지원 센터를 설치했다고 밝혔다.<김정우 기자·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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