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실업·인종차별 시위·미 위상 흔들···트럼프 리더십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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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인종차별 규탄 시위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팻말을 든 남성이 불길이 피어 오르는 도로 한복판에 앉아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종차별 규탄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들이 화염에 휩싸인 경찰차 앞을 지나가고 있다.[연합]

“약탈 시작될 때 총격 시작” 트윗···시위대를 폭력배로 규정
백악관 앞에 연이틀 시위대 몰려···“신중한 리더십 절실한데 정반대”

미국 내 인종 갈등이 유혈폭동으로 비화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동시다발적인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보건ㆍ경제의 ‘이중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불안감이 커진데다 대외적으로도 미중 갈등에 유럽 동맹국과의 엇박자 등 안팎으로 리더십이 휘청이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이후 항의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연일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분노한 민심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트윗에서 시위대를 폭력배로 규정하며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된다”고 엄포를 놓아 비난을 자초했다. 이 문구는 흑인 시위가 한창이었던 1967년 당시 시위 진압을 ‘폭력배와의 전쟁’으로 표현해 인종주의자로 지탄받던 마이애미 경찰서장이 청문회에서 쓴 표현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있는 트위터 측은 “폭력 미화에 관한 운영 원칙을 위반했다”는 고지문을 올렸고 이를 클릭한 후에야 트럼프 대통령의 글을 볼 수 있도록 조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약탈이 총격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라며 한 발 물러섰지만 뿌리 깊은 인종주의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 이후 시위는 들불처럼 번졌고 백악관 앞에도 이틀 연속 시위대가 몰렸다. 그는 30일에도 시위대를 플로이드 추모와 무관한 극좌파나 폭도로 비난하면서 연방군 투입을 경고하는 등 강경 대응 방침을 거듭 천명했다. 또 백악관에 몰려든 시위대를 겨냥해선 “(시위대 저지선을 뚫었다면) 가장 사나운 개와 불길한 무기를 맞이했을 것”이라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언사를 두고 주변에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고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코로나19로 미국인 사망자가 10만명을 넘었고 실업자도 4,000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폭발한 인종 갈등의 국난을 트럼프 대통령이 되레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전직 고위관리는 “지금은 무엇보다 치유가 필요하고 긴장 완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대통령 주변 모두 이를 알고 있지만 그에게 말할 수 있느냐가 문제”고 지적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강행을 계기로 커지는 미중 갈등도 난제다. 중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전면적 제재를 취할 경우 무역합의 파기로 이어져 미국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9일 발표된 대중 조치가 구체적인 내용이 빠진 엄포 수준에 그친 이유다. 게다가 독일을 위시한 유럽의 주요 동맹ㆍ우호국들이 사실상 반중 전선 동참에 거리를 두면서 대외적인 리더십에도 적잖은 손상을 입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벌써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불투명해져 동맹국들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다는 해석이 나올 정도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염병 대유행, 경제 위기, 정치적 혼란에 시민 분노까지 겹치면서 미국은 지금 국가적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고 진단한 뒤 “신중한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 우리에겐 정반대의 리더십이 있다”고 지적했다.<송용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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