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대표작 ‘별밤’이 물리학 현상 ‘난류’ 묘사?…논쟁 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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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1889년 6월 생레미)_[뉴욕 현대미술관(MoMA) 홈페이지 수록 소장 작품 사진 캡처]

언론보도로 유명세 탄 중국 샤먼대 연구팀 논문에 “말 안돼” 반박 잇따라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가장 유명한 작품 ‘별이 빛나는 밤'(1889)에 ‘난류'(亂流·turbulence)라는 물리학 현상이 드러나 있다는 논문에 이어 반박 논문이 나오는 등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27일(현지시간) 전했다.

‘난류’는 물리학과 기계공학의 유체역학 부문에 나오는 개념으로, 압력과 속도 등이 불규칙하게 변화하면서 움직이는 기체, 액체 등 유체의 흐름을 가리킨다.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것은 학술지 ‘유체의 물리학'(Physics of Fluids)에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숨겨진 난류」(Hidden Turbulence in van Gogh’s The Starry Night)라는 제목의 논문이 게재된 2024년 9월이었다.

이 논문에서 중국 샤먼(廈門)대 소속 마인샹(馬寅翔), 황용샹(黃永祥) 등 연구자들은 ‘별이 빛나는 밤’에 나타난 반 고흐의 필치를 분석해 본 결과 난류 현상이 파악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흐의 필치에 나타나는 패턴이 소련의 위대한 수학자 안드레이 콜모고로프(1903-1987)가 밝혀낸 난류 관련 스펙트럼 법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결과는 비전문가 대상 언론매체들의 대대적 보도로 발표 당시 엄청난 화제를 끌었다.

WP는 자사를 포함한 많은 언론사들이 당시 이 논문에 대해 보도했다며, 복잡한 대기 현상을 다루는 연구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드물게 교차한 사례였다고 보도 배경을 설명했다.

유체역학 전문가인 미국 워싱턴대 기계공학부의 제임스 라일리 명예교수는 그의 딸이 이 논문에 관한 언론 보도를 문자메시지로 보내줘 알게 됐다며 “논문을 내려받아 읽어봤더니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걸 알게 됐다. 그냥 아예 말도 안 된다”고 평가했다.

라일리 교수의 대학원 지도교수는 콜모고로프의 난류 스펙트럼 법칙을 확장한 연구도 했던 유체역학의 대가 스탠리 코신(1920-1986) 존스홉킨스대 교수였다.

라일리 교수와 버지니아 카먼웰스대 소속 모하메드 가드-엘-하크는 2025년 3월에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난류가 숨겨져 있는가?」(Is there hidden turbulence in Vincent van Gogh’s The Starry Night?)라는 제목의 반박 논문을 학술지 ‘난류학회지'(Journal of Turbulence)에 게재했다.

두 사람은 마인샹, 황용샹 등이 낸 논문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는 결론”이라며 “정상적인 경우라면 저자들의 주장은 난류 연구자들에 의해 당장 기각될 것”이라며 매우 가혹한 어조로 비판했다.

라일리 교수는 문제의 논문이 철회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라일리는 샤먼대 연구팀의 잘못된 연구 결과가 유명세를 너무나 많이 탔기 때문에 기록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라일리와 가드-엘-하크의 반박 논문 3편 외에도 샤먼대 연구팀의 결론을 반박하는 논문이 다른 연구팀에서 나왔다.

난류과 무관한 것이 명백한 에드가 드가(1834-1917)의 ‘꽃병 옆에 앉아 있는 여인'(1865)에 대해서도 샤먼대 연구팀과 같은 방법을 적용해 분석했더니 똑같은 수학적 패턴이 나옸다는 지적이 미국기상학회 회보(BAMS)에 올해 8월 실렸다.

논문 제목은 「만약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완벽한 난류를 묘사한다면, 드가의 ‘꽃병 옆에 앉아 있는 여인’도 마찬가지라고 해야 한다」였다.

그 후 원래 논문이 실렸던 학술지 ‘유체의 물리학’에도 반박 논평 논문이 실렸다.

2024년 논문의 교신저자인 황용샹 샤먼대 교수는 입장문에서 “주제에 관한 중대한 차이점을 지적해야겠다”며 “꽃은 구름이 아니다. 꽃 그림에서 특정 스펙트럼 결과를 발견하는 것은 구름에서 대기의 난류 패턴을 연구하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샤먼대 연구자들의 논문에 공저자로 참여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소속 연구자 프랑수아 슈미트는 라일리 교수 등의 반박에 대해 “30년간 수많은 논문을 발표해봤지만 동료들로부터 이처럼 적대적인 반응을 받은 적은 없다”며 “이들(라일리 교수 등)이 우리를 이렇게 가혹한 어조로 비판한 건 이번이 벌써 세 번째”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