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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March 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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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스의 세계미술관 산책12>유럽을 떠난 단 한 점의 다빈치; 워싱턴의 보물 〈지네브라 데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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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A 웨스트 빌딩


워싱턴DC 내셔널갤러리

꼭 유럽에 가야만 다빈치의 그림을 볼 수 있을까? 미국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빈치의 모든 작품이 유럽에 있고, 단 한 점만이 벗어나 있다. 바로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내셔널갤러리에 전시된 〈지네브라 데 벤치〉다. 현재 가장 비싼 그림은 2017년 경매에서 약 6,000억 원에 낙찰된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구세주)〉이다. 하지만 이후 공개되지 않으면서 ‘사라진 명작’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의 〈지네브라 데 벤치〉는 세계 정치의 중심지, 워싱턴 DC의 자랑이자 국가적 보물이다. 이 그림은 수도의 문화적 위상과 예술적 품격마저 끌어올렸다. 다빈치는 왜 이렇게 유명할까! 사람들은 그를 ‘신이 인류에게 내린 선물’이라 부른다. 그러나 명성에 비해 완성작은 20여 점 남짓에 불과하다. 작품의 희소성과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기법은 그 가치를 더한다. 그래서 다빈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은 언제나 특별하다.

〈지네브라 데 벤치 Ginevra de’ Benci〉 1474/1478, 패널에 유채화, 38.1×37cm

파리를 찾는 관광객이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도시를 찾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미국에서 단 한 점의 그림을 본다면 단연코 지네브라이다. 창백한 피부와 무표정한 얼굴, 꼭 다문 입술은 쉽게 열릴 것 같지 않다. 눈빛마저 차갑고 무심하다. 관람객은 그 시선에 붙잡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그녀는 마치 수백 년의 비밀을 간직한 듯 신비롭다.

지네브라는 다빈치가 스무 살 무렵에 그린 첫 여성 초상화이다. 마지막 네 번째 그림이 가장 유명한 모나리자이다. 공증인의 사생아로 태어난 다빈치는 거장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혹독한 도제 생활을 했다. 곧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내며 독립해 공방을 차렸다. 그림은 그가 처음으로 주문받은 작품이자, 야심 찬 행보의 출발점이다. 지네브라는 피렌체 부유한 은행가 집안 딸로, 교양과 지성을 갖춘 명성 높은 여성이었다. 그림은 약혼자 니콜리니가 결혼 기념으로 의뢰했다.

순도 높은 도자기처럼 빚어진 피부, 흐르는 듯한 머리카락, 정교한 드레스의 질감은 관람객을 매혹한다. 눈꺼풀과 입술 주변의 부드러운 음영은 빛의 산란을 정밀하게 관찰한 결과다. 윤곽선은 인위적 강조 없이 자연스러운 빛과 명암으로 연결된다. 특히 소용돌이치는 곱슬머리의 표현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 다빈치는 손가락으로 물감을 문질러 질감을 조절했으며, 실제로 그림 표면에서 그의 지문이 발견된다.

지네브라 뒤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자연 풍경은 관람객의 시선을 화면 깊숙이 끌어들인다. 왼쪽 어깨 너머로 보이는 강과 산, 수평선 끝에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푸른 물안개는 다빈치 특유의 스푸마토 기법으로 탄생한다. 윤곽선을 없애고 색과 명암을 부드럽게 녹이는 이 기법은, 신비롭고 오묘한 세계를 창조하는 다빈치의 비밀이다. 머리 뒤로 펼쳐진 덤불은 노간주나무로, 라틴어 ‘지네프로’에서 이름 지네브라가 유래한다. 이 나무는 르네상스 시대 여성의 미덕과 순결을 상징한다.

젊은 다빈치는 이 작품에서 이미 독창적 화법과 천재적 잠재력을 보여준다. 특히 인물의 자세가 그렇다. 정면을 살짝 비튼 3/4 초상은 당시 주류였던 옆모습 관습과 어긋난다. 그러나 그는 인물을 비틀어 관람객과 시선을 마주하게 만들었고, 이후 이 방식은 르네상스 초상화의 전형이 된다.

<아름다움은 미덕을 돋보이게 한다 VIRTVTEM FORMA DECORAT>

그림 뒷면에는 또 다른 상징이 숨겨져 있다. “아름다움은 미덕을 돋보이게 한다(VIRTVTEM FORMA DECORAT)”라는 문장이다. 앞면이 외형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뒷면은 그녀 내면의 미를 담은 또 하나의 초상화다. 노간주나무를 중심으로 월계수와 종려나무가 화환을 이루고, 사철 푸른 상록수는 그녀의 순수한 정신과 영원한 젊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지네브라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의 파산으로 작품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약 300년 후인 177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리히텐슈타인 왕가 컬렉션으로 나타났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나치 정권이 왕가의 재산을 몰수하면서 그림 역시 위험에 처한다. 다행히 작품은 가재도구에 섞여 나치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그녀는 비엔나에서 잘츠부르크, 알프스 산기슭의 수도원까지 떠돌다가 결국 왕가 소유의 파두츠 성에 숨겨졌다. 은신처는 지하 석조 와인 저장고였다. 1967년, 왕가는 이유를 밝히지 않고 미술시장에 내놓았다. 그림 등장은 전 세계 미술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치열한 경쟁 끝에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맞붙었고, 마지막 승자는 워싱턴이었다. 패배한 메트의 관장은 “양로원에 들어가서도 지네브라를 외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작품을 미국으로 옮기는 과정은 한 편의 007 영화 같았다. 특수 제작된 진공 케이스에 담겨 취리히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항공기 1등석 세 좌석을 차지했다. 작품과 두 명의 동승자를 위한 자리였다. 작전의 보안은 CIA와 FBI가 맡았다. 스위스에서 워싱턴으로 암호 전보가 도착했다. “Bird flies. 새가 날아올랐다.” 1967년 2월 20일, 세계 언론은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가 다빈치의 걸작 〈지네브라 데 벤치〉의 새로운 주인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네브라와 모나리자의 운명은 묘하게 닮았다. 젊은 다빈치가 그린 풋풋한 여인 지네브라는 여러 곳을 떠돌다 반세기 전 신대륙에 정착한다. 반면 노년의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는 루브르의 안주인으로 자리 잡았다. 다빈치의 그림을 보기 위해 꼭 유럽에 갈 필요는 없다. 워싱턴 DC에서 그녀를 만나면 된다. 북적이는 인파도, 두꺼운 방탄유리도 없다. 관람객은 눈앞에서 뽀얀 피부와 금실처럼 빛나는 머리카락, 천재 화가의 섬세한 붓 터치를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

<이 아네스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