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지급 조건으로 선거·이민 정책 요구… “위헌적 권한 남용” 반발
일리노이를 비롯한 26개 주가 연방 재난지원금을 지급받기 위한 조건으로 선거제도 변경과 이민 단속 협조를 요구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은 로드아일랜드주 연방법원에 제기됐으며,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국토안보부(DHS)의 새로운 보조금 지급 정책이 쟁점이다.
원고 측은 트럼프 행정부가 각 주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연방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선거제도 개편과 연방 이민 단속 협조를 강요하고 있으며, 국토안보부가 언제든지 임의로 보조금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로드아일랜드주 피터 네론하 법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또다시 핵심적인 재난 대응 예산을 불법적으로 보류하며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주 정부가 주민들에게 가장 적합한 정책을 결정할 헌법상 권한을 포기하도록 압박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도는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송에 참여한 주 정부들은 의회가 승인한 연방 예산에 새로운 조건을 부과한 것은 연방행정절차법(Administrative Procedure Act)과 연방헌법의 지출조항(Spending Clause)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FEMA 대변인은 이번 소송을 “정파적 반발”이라고 규정하며 “선거 보안과 미국 민주주의의 무결성을 보호하기 위한 상식적인 조치에 일부 진보 성향 정치인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변인은 “선거 보안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라며 “투표 절차와 데이터 보안, 유권자 등록 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커진 만큼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트럼프 행정부가 민주당 성향 주정부들을 상대로 연방 예산을 정책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이유로 제기된 수십 건의 소송 가운데 하나다.
교육 예산과 가정폭력 예방 보조금, 고속도로 예산 등에서도 연방정부가 정책 협조를 조건으로 지원금을 제한하려 한 사례가 잇따랐다.
연방법원은 이미 이러한 방식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여러 차례 내린 바 있다.
지난해에는 FEMA 보조금에 새로운 조건을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는 판결이 내려졌고, 올해에도 국토안보부가 연방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주정부의 예산을 다른 곳으로 전용하는 것을 막는 판결이 나왔다.
존 맥코널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지난해 판결에서 “주정부들은 수십억 달러의 연방 지원금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으며, 자체 경찰력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결정할 주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역 경찰과 이민자 사회 사이에 형성된 신뢰가 훼손될 수 있고, 각종 교통 인프라 사업도 축소되거나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던 동일한 조건을 올해 2026 회계연도 보조금에도 다시 적용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이 된 조건 가운데 하나는 각 주의 선거제도 변경 요구다.
행정부는 각 주가 종이 투표용지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개표 결과를 수작업으로 재검증하며, 유권자 명부를 대조하고 등록된 모든 유권자의 시민권을 확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각 주는 국토안보부 보조금의 최소 20%를 지원받지 못할 수 있다.
이 예산은 사이버 공격과 테러 위협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보안 사업에 사용된다.
원고로 참여한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트럼프 행정부는 국토안보와 재난 대응에 필요한 핵심 예산을 볼모로 삼아 선거제도를 장악하고 근거 없는 음모론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패배 이후 우편투표에 광범위한 부정이 있었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해 왔지만, 공화당이 실시한 조사와 여러 차례의 감사 결과에서도 조직적인 부정선거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지역의 선거 관리 권한을 연방정부가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이점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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