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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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목사
벧엘교회 부목사(시카고)

 

“개똥이 엄마”, “남산 댁” “아무개 동생” 등의 표현을 텔레비젼 드라마 속에서 뿐만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사람을 부르거나 호칭할 때 사람들이 종종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한 개인이 다수보다 두드러지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공동체적(Collectivistic) 사회 분위기가 사람을 부를 때 각 개인의 고유한 이름을 호칭하지 않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또한  남성 우위 유교 문화 속에서 여성이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는 방편으로 직접적인 이름을 부르기 보다는 대리적 호칭이 선호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 사회처럼 개인주의적 (Individualistic) 문화 환경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각 사람의 이름을 놔두고 아이의 이름을 붙여 “아무개 엄마”라 부르고, 살고 있는 동네의 이름을 붙여 “무슨 동네 댁” 또는 “누구 동생” 이라고 부르는 것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인간이 인식하고 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계는 각각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다. 심지어 하늘에 떠 있는 별들도 그것을 명시하는 고유숫자 또는 고유의 별자리 이름을 부여받아 그대로 사용된다. 심지어 땅에 피어 있는 초목들도 자기의 이름(학명)으로 불리운다. “소나무” 보고 “은행나무 옆 나무” 라고 부르지 않고, “장미꽃” 보고 “개나리꽃 옆집 댁”, 또는 “아무개 엄마 꽃” 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이 창조될 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창 2: 19) 되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에서는 종종 그 이름을 바꿔 부르며 그 새로운 의미를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아브람이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이 되었고 사래가 민족의 어미라는 뜻의 “사라” 로 이름이 바뀌어 불렸다. 또 야곱이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의미의 “이스라엘” 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의 후손들은 좌충우돌 하면서도 정말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살게 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 보게 된다.

 

그만큼 불려지는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개 엄마”, “누구의 동생” 이렇게 불렸던 사람중에는 자기 자신은 없어지고 다른 존재의 장식품처럼 느끼며 슬픈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컨데, 공부 잘하는 형이나 누나와 함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다니던 동생 중에는 선생님들이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 너 아무개의 동생” 하며 늘 “누군가의 동생”으로 불리다 보니, 성인이 되서도, 결혼한 후에도 늘 열등감과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단 한번도 자기 이름으로 불린적이 없었다는 사람도 있다.

또 결혼후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늘 “아무개 엄마” “무슨 댁”으로 불리며 아이들을 키우며 살림 하느라 눈코뜰새없는 자신의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성도 있다는 보고다.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과 상대방의 이름을 정중하게 불러주기를 즐겨한다. 결혼한 상대방에게 누구 누구 엄마가 아닌, 여보, 당신, 허니 또는 이름을 정겹게 불러 주는 것을 통해 더욱더 상대방이 자기 자신이 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이름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라. 그리고 그 이름 뜻에 걸맞게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고백한 김춘수의 시처럼 이름을 불러주라. 꽃이 되고 의미가 되는 아름다운 사람을 보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