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때보다 재무상황 심각”···인수가 낮추기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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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멈춰서 있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연합]

1만6,126%나 치솟은 부채비율, 재협상 지렛대 활용
유상증자 발행가액 조정·구주가격 인하 제안 가능성
“금호산업 신뢰성에 의문”···산업은과 직접 담판 노려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에 인수 의지는 변함없지만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요구한 가장 큰 이유는 가격 조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인수계약을 체결했을 당시 가격인 2조5,000억원에 비해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가 크기 떨어진 만큼 인수가격을 재산정해야 한다는 것이 HDC현산의 시각이다.

HDC현산은 입장문을 통해 크게 세 가지를 요구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제표가 현재의 재무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돼야 한다는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의 상황에도 계속기업으로서 존속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 계약을 연장할 경우에도 협상 파트너는 금호산업이 아닌 산업은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HDC현산이 지적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제표 상황은 인수가격과 직결되는 문제다. HDC현산은 주식매매계약(SPA) 기준일인 지난해 6월 말 대비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HDC현산은 이를 넘어 감사보고서 등에 나타난 현재의 경영상태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HDC현산은 “부채비율은 1·4분기 말 현재 계약 기준인 2019년 반기 말 대비 1만6,126% 급증했으며 자본 총계는 1조772억원 감소해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외부 감사인이 아시아나항공 내부 회계관리 제도에 대해 부적정 의견을 표명함에 따라 이번 계약상 기준인 재무제표의 신뢰성도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또 HDC현산은 인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추가 차입과 정관 변경, 계열사에 대한 지원 등 중요한 재무적 변화를 아시아나항공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부채비율과 자본상황이 악화됐고 재무적 변화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결국 기업가치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HDC현산의 주장은 결국 기업가치가 계약 당시에 비해 달라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면서 “인수 의지 자체를 번복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린다”고 말했다.

HDC현산은 지난해 말 SPA 체결 당시 구주 30.77%를 3,228억원에 사고, 2조1,771억원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만큼 HDC현산은 구주 가격 하락, 유상증자 발행가액 조정 등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또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에 지원한 대출금의 만기 연장, 영구채 5,000억원의 출자전환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HDC현산이 계약을 연장할 경우 협상 파트너는 금호산업이 아닌 산업은행이어야 한다고 요청한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HDC현산 측은 입장문에서 “인수계약에 관한 논의가 계약 당사자들에 국한된 범위를 넘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의, 대승적 차원의 실질적 논의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계약 연장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채권단이 최근 HDC현산에 오는 27일까지 인수 의사를 밝히라고 압박했던 것에 대한 입장표명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HDC현산이 채권단과 합의하면 인수 마감시기를 6개월 연장해 올해 말까지 늦출 수 있다는 계약서상의 조항을 활용하기 위해 이 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계약시한을 일단 올해 말로 미룬 상태에서 협상과 자금조달 등의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황 개선 여부와 HDC현산의 인수 의지가 얼마나 지속되느냐가 매각의 핵심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다양한 변수들도 산재해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상반기 말 회계의 기준이 되는 6월 말까지 영구채를 투입해 부채비율을 낮추지 않을 경우 항공기 리스, 자산유동화증권(ABS), 회사채 등에서 조기 회수 트리거가 대거 발동될 수 있다. 게다가 HDC현산과 컨소시엄을 꾸렸던 미래에셋대우가 최근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회의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이 완전자본잠식을 눈앞에 둔 부실기업인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향후 경영여건도 좋지 않은 만큼 재무적투자자(FI)로 돈을 쏟아붓기 어려운 상황라는 것이다. 만약 미래에셋대우가 이탈한다면 HDC현산은 최소 5,000억원의 금액을 추가로 조달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매각이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관리하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박시진·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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