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풀이]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

3328

방두표(시카고 문인회 회원)

글자대로 직역을 하면, 말 그대로 동쪽 집에서 밥을 먹고, 서쪽 집에서 잠을 잔다는 뜻의 고사성어 이지만, 그러나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도는 사람에게 뭐하냐고 물으면 ‘동가 식 하고 서가 숙(東家食, 西家宿) 하며 지낸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냥 단순히 동쪽 집에서 밥 먹고, 서쪽 집에서 잠을 잔다는 말일까요? 이 말의 뜻은 옛날 어느 집에 무남독녀(無男獨女)가 있었습니다. 귀엽게 고이고이 잘 키워서 이제는 시집갈 혼기가 차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처녀가 16세가 되면 혼기가 찼다고 하고, 20세가 되면 과년(過年)하여 노처녀(老處女)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중매쟁이가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어르신! 동쪽에 좋은 신랑감이 있는데, 집안이 굉장히 부자입니다. 먹고사는 것은 전혀 걱정 없으며 하인들도 많아 색시는 손에 물도 묻히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흠이라면 신랑감이 좀 모자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다른 중매쟁이가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쪽에 좋은 신랑감이 있는데, 그 총각은 인물도 훤칠하게 잘 생겼고, 배운 것이 많아 아는 것도 많으며, 과거시험도 준비 중이라 장래가 촉망되는 신랑감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집안이 가난하다는 점입니다. 그 점만 빼면 요즘 보기 드문 훌륭한 신랑감입니다.’ 처녀의 아버지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딸을 불러 본인에게 의사를 직접 물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얘야! 너는 동쪽 사람이 맘에 드느냐, 서쪽 사람이 마음에 드느냐?’ 딸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말하기가 거북하면 행동으로 표시해도 된다. 동쪽 사람이면 오른손을, 서쪽사람이면 왼손을 들어보아라. 그랬더니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두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깜짝 놀란 아버지는 딸에게 ‘얘야! 이게 어찌된 일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딸의 대답은 ‘아버지! 동쪽 신랑감은 사람이 좀 모자라지만 재물이 많은 부자이니까,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신랑감은 가난하지만 사람이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되니 잠은 서쪽 집에서 자겠습니다. 즉 두 가지 모두 실리(實利)를 얻겠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처녀가 말한 두가지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利益)만을 골라서 취하는 것을 두고 ‘동가 식, 서가 식 하겠다.’는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또, 한 고사(古事)로 고려(高麗)가 망하고 조선(朝鮮)이 세워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개국공신(開國功臣)들을 불러 연회(宴會)를 베풀었는데, 이 때 어느 대신이 기생인 ‘설중매’(雪中梅)에게 그를 희롱하는 말로 빈정거리며, ‘너는 낮에는 동쪽 집에서 먹고, 밤에는 서쪽 집에서 자는 기생이니, 오늘 밤은 나와 보내지 않겠느냐?’

기생도 이에 지지 않고 ‘아무렴요. 어제는 고려를 섬기고, 오늘은 조선을 섬기는 대감이시니 저와 밤을 보내시기에 꼭 알맞지요, 안 그렇습니까?’ 이처럼 요즘 세상에는 지조(志操)없이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기 위해 여기 저기 동쪽이든, 서쪽이든 빌붙어 사는 행태를 꼬집는 말로도 쓰입니다. 이 얘기는 <대동기문>(大東奇聞) 책에 실려 있는 고사입니다. 동가 식, 서가 숙(東家食, 西家宿) 하며, 자신의 신념을 버린 체, ‘욕심(慾心)만을 위해 지조 없이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철새와 같은 간신배(姦臣輩)’를 두고 이르는 말로도 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