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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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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한국일보 심층인터뷰] 전통의 태평무 춤사위로 세계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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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유산 제92호 강선영류 태평무의 전수자’ 손경애교수

– 춤과 헌신으로 그려낸 디아스포라의 숭고한 예술


10월 13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제11차 세계한인여성대회가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세계화를 통하여 한국문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화려하게 막이 올랐다. 수많은 이들의 경외 어린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단아하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내뿜으며 포토월 앞에 선 이는 바로 대한민국 세계화 전통문화예술 부문 공로 대상의 주인공, 손경애 교수다. 일흔을 넘긴 나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그녀의 자태는 시간의 거친 풍파를 온전히 비껴간 듯 탄탄하고 우아하다. 평생을 학문과 춤에 매진하며 몸과 마음을 꼿꼿하게 유지해 온 그녀의 지독한 자기 관리는, 단순히 외형적인 젊음을 좇는 가벼운 욕망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과 삶을 대하는 깐깐한 예인이자 구도자의 숭고한 정신적 발현이다. 언제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스스로를 갈고닦는 그녀는 모든 여성의 로망이자 완벽한 롤모델 그 자체다. 옛 청주사범대학교인 서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을 맞이한 후, 그녀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겸임교수로서 한국과 미국을 부지런히 오가며 자신의 두 번째 인생을 찬란하고도 묵직한 헌신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헌신으로 빚어낸 두 번째 인생, 디아스포라의 어머니
1974년 교단에 첫발을 내디딘 후, 1980년 4살짜리 아들의 손목을 잡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84년 교육행정 및 리더십 분야에서 Ph.D를 취득했다. 그 후 1988년 한국으로 돌아와 현대사회연구소 교육문화연구실 책임연구원을 거쳐 2018년 대학에서 정년 퇴임을 맞이했을 때, 그녀는 교육자, 연구자로서의 여정을 끝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서원대학교에서 교육학과 교수로서 수십 년간 후학을 양성하며 학자로서의 무거운 책무를 명예롭게 마쳤을 때, 많은 이들은 그녀가 이제 안락하고 평온한 노후를 즐길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세상의 뻔한 잣대를 보기 좋게 뛰어넘었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한 그녀는 자신의 제2의 인생을 온전한 ‘비움’과 ‘나눔’의 시간으로 재정의했다. 자신이 평생 쌓아온 지식과 재능, 그리고 예술적 감각을 온전히 한인 이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남은 생의 가장 큰 축복이자 사명으로 여긴 것이다. 그녀의 나눔은 강단 위에서의 고상한 가르침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고단한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한인 동포들의 복지를 위해 그녀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울대, 미국 UT Austin, UC LA, UC Berkeley 등의 교육 기관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성격심리학, 긍정심리학, 정신 건강, 인적자원 개발 등에 관한 교육 및 훈련 과정을 이수하였다.

이에 대해 거친 노동으로 굽은 동포들의 등과 뭉친 근육을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기 위해 스포츠 마사지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고단한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한인 동포들을 위해 그녀는 기꺼이 몸을 낮추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 거친 노동으로 굽은 동포들의 등과 뭉친 근육을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기 위해 정식으로 마사지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언어와 낯선 제도의 장벽 앞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막막해하는 이민자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해 주기 위해 늦은 나이에 그 어렵다는 법무사 자격증까지 거머쥐었다. 평생 분필과 논문을 쥐었던 학자의 두 손이, 이제는 상처받은 육체를 치유하는 치유자의 손이자 억울한 이들을 대변하는 단단한 방패가 된 것이다. 손 교수는 이처럼 다양한 교육과 훈련 과정에는 항상 그녀의 남편이 함께 했다고 토로하였다.

또한, 미국 Inland Korean Cultural Center 부원장, 세계한인여성연합회 미국 LA 지회장,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강선영류 태평무 전수자, 전북무형문화재 제59호 신관철류 수건춤 이수자 등의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직무 수행을 통하여 동포 사회의 문화적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나아가 한국 6.25 참전용사를 위한 행사, 한인 사회와 주변 대학에서 실시하는 Korean Night 등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K-Culture, K-Dance 속에 내재되어 있는 한국문화의 멋과 맛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손 교수의 노력도 남달랐다. 이토록 한인 사회와 세계를 껴안는 그녀의 품은 캘리포니아의 태양보다 뜨겁고, 어머니의 품처럼 한없이 넓고 따뜻하다.

손경애교수(좌)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버나디노(CSUSB)의 교사 교육(Teacher Preparation) 과정 중 14회차 수업인 ‘문화의 다양성(Cultural Diversity)’ 에 대해 본지 특파원(우)에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얼, 장엄한 춤사위로 피어나다
그 넓고 따뜻한 품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언제나 ‘한국 춤’이 뜨겁게 고동치고 있다. 그 넓고 따뜻한 품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언제나 ‘한국 춤’이 고동치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제92호 강선영류 태평무의 전수자’인 그녀는 늦은 나이에 한국무용이라는 낯선 길에 접어들었지만, 뼈를 깎는 고통과 남들보다 두 배, 세 배의 땀방울로 그 예술적 깊이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진 왕비의 활옷을 입고, 머리에는 화려한 떨잠으로 장식된 장중한 어여머리를 쓰고, 손에 든 오방색 한삼의 너늘거림을 추는 태평무는 한국 전통 미학의 정수 그 자체다. 때로는 전북 무형문화재 제59호 신관철류 수건춤 이수자로서 무대 위에서 하얀 수건을 허공에 흩뿌리며 살풀이춤을 선보일 때면, 인간의 희로애락을 초월하여 묵은 한(恨)을 환희로 승화시키는 예술가의 웅장한 혼이 객석을 압도한다. 그녀에게 춤은 단순한 육체의 움직임이 아니라, 이민자들의 디아스포라적 슬픔을 달래고 한국의 얼을 세계에 전파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영혼의 언어인 것이다.

사별의 아픔을 넘어선 영원한 순애보
그러나 이 화려하고도 숭고한 헌신과 예술적 성취 이면에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너무도 시리도록 아름다운 순애보가 자리하고 있다. 영광스러운 수상의 순간, 그녀의 가슴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스승이었던 한국 AI의 선구자 故 정덕진 교수였다. 사랑하는 남편을 하늘로 떠나보낸 지 2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녀의 시계는 여전히 그에 대한 애달픈 그리움과 사랑에 맞추어 돌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남편이 잠든 시립공원을 찾아가, 생전 다정했던 부부의 사진과 단란했던 가족사진을 정성스레 올려놓고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속삭이며 남편을 기린다. “당신의 춤에 AI 기술을 접목해 한국 춤을 세계화해 보자.”

생전 남편이 심어주었던 이 원대한 비전은, 세상의 반쪽을 잃은 거대한 상실감 속에서도 그녀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가장 튼튼한 동아줄이 되었다. 남편을 떠나보낸 깊은 슬픔에 한때 가녀린 몸이 안쓰러울 정도로 야위기도 했지만, 지난번 뵈었을 때 어느 정도 살이 올라 다시금 탄탄한 모습을 되찾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녀가 슬픔을 딛고 다시 꼿꼿하게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AI를 기반으로 한 한국 춤의 세계화를 위하여 하늘에서 누구보다 아내의 성취를 응원하고 기뻐할 남편의 따뜻한 시선이 늘 곁에 머물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이 애틋한 순애보는 그녀의 삶과 춤사위에 더욱 깊은 우수와 형언할 수 없는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K-Culture, 글로벌 교육의 단단한 뿌리가 되다
남편의 든든한 영적 지지와 무한한 사랑을 자양분 삼아, 손경애 교수는 이제 개인의 예술적 성취를 넘어 세계를 향한 거대한 교육적 사명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림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미국의 자택에 머물며, 그녀는 미국 대학의 정규 교사 교육 과정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특히 그녀의 혜안과 실천력이 가장 찬란하게 빛을 발한 곳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버나디노(CSUSB)의 교사 교육(Teacher Preparation) 과정이었다. 이 과정의 14회차 수업인 ‘문화의 다양성(Cultural Diversity)’ 챕터에서 일본과 중국 문화만 거론될 뿐 한국문화는 단 한 번도 다뤄지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 그녀는, 미래의 미국 교사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특별한 커리큘럼을 직접 설계했다. 이 커리큘럼은 단순한 이론 교육을 넘어 오감을 만족시키는 입체적인 문화 체험의 장이었다.

첫째, 유네스코(UNESCO)에 등재된 한국의 문화유산 현황을 차트로 소개하며 반만년 역사의 깊이를 증명했고, 무용가인 자신의 특기를 살려 처용무와 강강술래 등 전통춤의 가치를 전수했다.

둘째, 현지 학생들에게 가장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것은 K-Pop과 전통 장단의 결합이었다. 방탄소년단(BTS)이 부른 ‘아리랑’을 활용해 한국 고유의 세마치장단을 가르쳤는데, 장구가 없는 교실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허벅지를 장구 삼아 두드리며 단 10분 만에 3박자 장단을 완벽히 습득했고 신명 나는 리듬에 열광했다.

셋째, 한국의 주거 문화와 예절을 시청각적으로 생생하게 전달했다. 시댁인 상주 우산 정씨 가문의 전통 양반 저택을 통해 ‘양반’의 개념을 설명하고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의 웅장한 풍광을 영상으로 보여주었으며, 전통 혼례인 폐백에서 밤과 대추를 던지는 문화를 소개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왕비가 입던 활옷을 포함한 한복의 선과 예복에 담긴 우아함도 잊지 않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미각을 통한 문화 교류인 ‘K-Food 체험’이 커리큘럼의 대미를 장식했다. 당근과 시금치 등 식재료의 건강한 효능을 설명한 뒤, 학생들이 직접 손으로 잡채를 버무리고 김밥을 만들며 한국의 ‘손맛’과 ‘정(情)’을 느끼게 했다. 서툰 솜씨로 젓가락을 쥐고 한국 음식을 즐기는 학생들의 눈빛에는 낯선 문화에 대한 깊은 호감이 깃들어 있었다. 이 수업의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배운 아리랑 장단과 한국문화를 교생 실습에 나가 미국 아이들에게 다시 가르치는 ‘문화의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이는 곧 한국 문화가 미국 정규 교육의 튼튼한 뿌리 속으로 깊숙이 뻗어나가는 참으로 위대한 쾌거였다.

세계의 태평(太平)을 향한 멈추지 않는 디딤새

“앞으로 저는 오늘날 전 세계 각지에서 저마다의 등불을 밝히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계시는 세계한인여성 동포 여러분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를 넘어 전 세계에 우리 전통춤의 맥을 잇고, K-Culture의 진정한 깊이를 널리 전파하는 연구자, 교육자, 그리고 예술가로서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대회장에 울려 퍼진 그녀의 이 묵직한 수상 소감은 일회성 인사를 넘어, 남은 평생을 세상의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넓은 곳을 향해 온전히 바치겠다는 거룩한 사명 선언이었다. 학자로서 쌓아 올린 서늘한 지성, 봉사자로서 몸소 실천하는 따뜻한 헌신, 예인으로서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뜨거운 혼, 그리고 먼저 떠난 남편을 향한 지고지순한 순애보까지. 손경애 교수의 70년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장엄한 대서사시이자, 감동으로 점철된 예술 작품이다. 오늘도 경복궁 경회루 앞마당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의 수많은 대학과 무대 위에서 하늘과 땅을 잇는 10박의 전통 무속 장단, 그 웅장한 터벌림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그녀의 오색 한삼 자락은 언제나 헐벗고 지친 세상을 포근하게 품어 안을 것이다.
“덩궁따 궁따닥따 쿵궁궁따 궁따닥따……“

사랑하는 이를 향한 끝없는 그리움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한국의 K-Pop, K-Culture, K-Dance를 알리는 일에 남은 생의 마지막 사명을 쏟아부으며 전 세계인의 마음에 짙은 태평(太平)을 기원하는 사람. 세계 최고의 춤꾼이자 글로벌 교육자인 손경애 교수가 내딛는 그 단단하고도 아름다운 디딤새 하나하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문화 세계화의 가장 위대하고도 눈부신 역사로 맹렬하게 기록되고 있다.

이가희 시카고한국일보 한국특파원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시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