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율법과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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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홍 장로(미주장로선교회장)

율법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신앙 생활에서 율법과 은혜의 균형 잡힌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율법도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함이라(마5:17)”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율법과 형식과 직분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율법과 형식과 직분과 더불어 내용을 갖추라는 말씀이다. 은혜를 내세우며 율법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신앙인들 가운데 더러는 율법을  무시하고 은혜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떠한 사물에 대해 원인과 과정은 보지 않고  결론만을 가지고 무조건 은혜만을 강조 한다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용서 하라는 것은 은혜만을 강조하며 방종에 빠져 생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참된 신앙인이라 할 수 없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과 같아서 형식이 주는 유익도 많다. 영성만 강조 하다 보면 신학이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신앙만큼 신학도 필요하다. 신학이 틀이 없으면 신앙은 시류와 감정을 따라 본질과 내용까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균형 잡힌 생각과 사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날 공자의 제자 자하가 물었다. “선생님! 안희는 사람 됨이 어떤가요?”, 인의는 “나보다 낫지”, “자공은 어떤가요?”, “말 재주는 내가 못 따라가”, “그럼  자로는요?”, “용기는 내가 엄두도 못내”, “자장은요?”, “장중함은 나보다 나아.” 그때 자하가 물었다. “그들이 선생님보다 나은데 왜 선생님께 머리를 숙이고 배우려고 하지요?” 공자가 대답했다. “안회는 인의를  말하지만 변통을  몰라”. “자공은 말은 잘 하지만 겸손하지 못해”. “자로는 용감하지만 물러날 줄 몰라”. “자장은 장중하지만 남과 못 어울려. 그들은 각각 장점도 가졌지만 단점도 있어. 내가 그들을 잘 알고 인정하기에 그들이 나를 일심으로 섬기는 것이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큰 인물이 되려면 균형 잡힌 사고와 태도가 필요하듯이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내용과 더불어  형식도 다듬을줄 알아야 한다.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없는 형식 주의가 문제다. 율법 주의는 버려야 하지만 율법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기에 신앙 생활에 필요한 것이다. 은혜를 내세우며 율법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대상을 자기 기준으로 보면 바리새인이 된다. 결국, 율법에서 사랑이 빠지면 그 율법은 껍데기만 남는다. 율법은 억압을 위해 주어지지 않고 사랑과 자유와 평화를 위해 주어졌다. 율법 부여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고  율법 준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사랑의 표현이다. 그처럼 법을 지킬때는 늘 그 바탕에 사랑의 정신이 깔려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삶을 자랑하며 자신을 기준으로 사랑 없이 남을 판단하는 것이  잘못이었다. 사랑이 결여된 율법을 지키는 것은 외식이 된다.

요즘 교계를 보면 질서와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고 은혜만을 강조해서 인지 안하무인인 사람들이 많다. 한국 교회가 질서와 회개와 눈물을 잃어 버렸다. 자기 뿐이다. 교회만 잘 되면 되지 논리와   원칙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율법을 무시하고 은혜와 사랑만을 강조하며 인간적인 관계 형성의 상식이 소멸되어가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기독교가 십자가와 부활이 같이 가듯이 신앙인의 생활은 율법과 은혜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성경은 말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 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마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