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홍상수의 영화가 볼만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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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명(시카고신학대 교수)

 

관객 1천만 명 이상을 동원하는 한국영화가 거의 해마다 개봉되지만, 정작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평가받는 홍상수의 영화를 찾는 관객은 보통 몇 만 명을 넘지 않는다. 그의 영화가 새롭게 개봉되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유럽 영화제에도 초청 되지만, 재밌는 영화란 입소문을 타고 관객을 끄는 경우는 없다. 그의 영화에서 깊은 생각거리를 발견하는 마니아들이 있지만 일반 관람객들이 관심 있는 주제들은 아니다. 최근 그의 영화가 학술적인 논문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평론가들이 찾아낸 의미와 관전 포인트들이 있지만 흥행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유 하나를 들자면 그의 영화가 ‘영화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일관되게 다루는 영화에 관한 영화이고, 그가 지금까지 남긴 업적은 영화사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이라는 사실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관객에게 익숙한 주제나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관객들의 무지를 탓하며 심오한 척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없는 것을 있는 척하는 위선에 대한 고발은 그의 영화의 오랜 주제다. 그의 영화에는 관객들이 응원하고 싶은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역사의식이 있는 인물도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인물도 없고, 최후에 승리하는 약자도 없다. 기억에 남는 깔끔한 결론도 아름다운 영상도 없다. 연기를 많이 배운 배우들은 오히려 그의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술을 마시게 해서라도 습득한 연기의 기술을 잊게 만든다. 그의 영화는 주제도 목적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시간의 순서와도 상관없이 이야기들을 나열해 놓는다. 특별한 사건도 반전도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영화를 성공이나 실패의 언어로 판단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그의 영화에서 의도된 부분들이다.

그의 영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이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다. 영화에 대한 감독의 생각은 주연 배우의 입을 통해 혹은 영화의 구성을 통한 영화에 대한 묵상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두 영화는 <극장전>과 <옥희의 영화>다. 상업성에 함몰돼 예술은 사라지고 위선만이 남은 영화에 대한 비판, 공감능력을 상실한 채 식상한 공식만 반복하는 영화에 대한 고발도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고 그는 자신이 영화의 상실한 예술성을 찾는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다만 영화가 무엇인지 솔직하기 묻고자 한다. 검증된 영화제작의 습성을 탈피하고, 관객들의 길들여진 환상과 기대를 깨는 영화를 만든다. 그는 영화 속에 관객이 몰입해 빠져들 세계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주인공의 의도나 목적성이 주도하지 않고, 우연적인 사건이 비슷하게 또 다르게 반복되는 구조로 전개된다. 우리의 일상이 우연과 반복으로 이뤄진다고 믿고, 그런 일상을 드러내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두 영화에서는 영화 속에 또다른 영화를 등장시켜 영화의 안과 밖 그리고 가상과 현실에 대한 생각을 요구한다. 20편이 넘는 홍상수의 영화를 하나의 화두로 표현하자면 ‘영화는 영화다’라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단순하고 집요할 수는 없다.

지난 20년 홍상수의 영화가 일관된 실험정신으로 추구했던 것은 영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었다. 영화의 역사에서 이제까지 볼 수 없었고, 특별하고 싶지 않은 그의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실험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홍상수의 영화를 통해 자신의 영화관을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