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서머타임이 필요 없었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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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그 어느 때보다 길었다는 두어 주의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가 지나가고 나서 저녁이 더 빨리 오는 느낌이다. 이른바 ‘서머타임’이라는 일광시간 절약 시기(DST)가 끝나고 나서 밤이 많이 길어진 것 같은 느낌을 확연하게 갖는다. 저녁을 먹고 나서 하던 산책이 힘들어졌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져 저녁 먹기 전에 이미 어둡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세계에서는 여름이면 13-14시간이었던 낮이 겨울에는 10시간 남짓한다. 하지만 신약성서 시대에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변함없이 낮 시간이 그대로 12시간이었다. 우주의 물리 법칙이 바뀐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말일까? 예수께서도 “낮이 열 두 시간이 아니냐”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요 11:9).

물론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의 시각 측정법이 오늘날과 달랐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나면 활동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밤 시간은 세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밤을 세 시점 정도로 대충 구분했다. 우리 동양인들이 그랬듯이 1경, 2경, 3경으로 구분하면 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활동을 하는 낮은 무조건 열 두 시간으로 나누어서 해 뜨는 때가 제 1시, 해 지는 때가 12시였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던 9시(막 15:34)는 오늘날의 오후 3시 무렵이었고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왔던 제6시쯤이라 함은(요 4:6)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정오를 뜻했다. 오순절에 성령 강림과 함께 술이 취했다는 오해를 받았던 때가 3시라고 했으니 요즘 시간으로 환산하면 오전 9시경이었다. 정신 나간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그 시간에 집단적으로 술이 취해 해롱거릴 리가 없다는 것이 베드로의 발언 요지였다(행 2:15).

낮 시간을 이렇게 나누다 보니 12월에는 한 시간이 우리의 45분이 되고 6월에는 한 시간이 우리의 75분이 되고 만다. 낮의 한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었다 한 셈이다. 정확한 시각관념에 중독된(?) 현대의 우리에게는 우습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무조건 낮의 길이가 12 시간이었던 그때는 요즘의 서머타임과 같은 제도의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팬데믹으로 인한 부자유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백신에 대한 희망이 다소 밝아졌지만 그나마 이 겨울은 지나고 봄이 되어야 일반 대중에게 보급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파우치의 발언을 읽고 보니 갑갑하다. 날이 짧아지는 팬데믹의 겨울, 그래도 우리는 밤에 속하지 않고 낮에 속한 삶으로 밝아야 하겠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