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자아와 타자 사이의 사랑과 존재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가는 과정을 작품화 하는데 노력했습니다”
김영미 화가는 인체를 매개로 인간의 기억과 존재, 관계와 시간의 흔적을 탐구해온 회화작가다. 1990년대부터 국내외에서 30여 회의 개인전과 200여 회의 그룹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으며, KIAF를 비롯한 국내외 주요 아트페어 50여 회에 작품을 선보여왔다. 그는 뉴욕 첼시, 룩셈부르크, 상하이, 프랑크푸르트, 몬트리올, 샌프란시스코, 오사카 등 국내외 주요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전시를 개최하며 활동 영역을 확장해왔다. 뉴욕은 총 6회의 개인전 그중에서도 2024년부터 첼시에서 올해까지 3번의 개인전을 여는 샘이다. 인체를 지속적으로 표현을통해 의인화시키거나 인체를 해체시키는 작업을 하다가 4년전부터는 인체를 쌓아올린 노동의 집합체로 인해 멀리서보면 추상이나, 가까이서 보면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집합체를 통해 공간을 해탈하는 노동의 명상을 통해 고통을 극대화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중이다. 구상·반추상·추상을 넘나 들며 현실과 내실 사람간의 관계 그리고 현존 모든 생명체와의 연결고리의 관계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화가 김영미(61년생 홍대미대 전북 김제출신). 김영미 화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축적의 미학-수많은 인간 형상을 화면에 겹겹이 쌓아 올리는 작업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론적 의미를 갖나요?
인간의 삶만큼이나 각자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수많은 고통과 연민을 바라보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화면에 겹겹이 쌓여 있는 수많은 인간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과 외로움을 지니고 있으며 때로는 다른 사람의 위로를 통해 다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이나 역할로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서의 ‘나’를 발견하고, 동시에 나와 마주한 타인 역시 나와 같은 하나의 존재임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서로의 고통을 바라보고 공감하며 건네는 위로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타인을 향한 마음도 깊어져 갑니다. 결국 이 작업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며, 자아와 타자 사이의 사랑과 존재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색채의 사유-메디치 블루’를 비롯한 깊은 색감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메디치 블루를 비롯해 다양한 색조를 사용하지만, 내가 블루에 특별히 마음을 두는 이유는 그 깊이가 지닌 치유의 힘 때문이다.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밝고 경쾌하게 다가오는 블루의 다채로운 표정 속에는 서로 다른 감정과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나는 그 색조의 깊이와 매력에 대한 애정을 작품에 담고자 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때그때 다른 감정이 이입될 수 있지만, 결국 블루가 지닌 깊은 울림을 통해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멀리서 보면 추상이고 가까이서 보면 구체적인 인간 군상이 드러나는 이중적 구조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결국 나는 화론삼법에 나의 작업 철학을 담았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연의 이치를 바라보고,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과 그 안에서 느낀 자신의 감정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이후에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놓인 반추상적 작업을 통해 보이는 세계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그 과정에서 삶과 감정의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치유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지나고 남은 자리에서 비로소 추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극사실적인 하나의 존재가 보이지만, 조금 멀리 물러서면 그것은 하나의 추상으로 다가옵니다. 서로 다른 듯 보이는 구상과 추상이 결국 하나의 화면 안에서 만나고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화론삼법이 말하는 완성의 단계에 이르고자 했습니다.
부재와 기억-작품 속에 깊게 배어 있는 지나간 시간과 그리움의 흔적들은 어떻게 화면에서 생명력을 얻나요?
내면의 풍경이 된 대상: 엄마라는 존재는 타자가 아니라 나의 존재 양식 그 자체이자 가장 원초적인 기억의 안식처입니다. 대상을 외부에서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DNA를 통해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릴 때 형태는 추상적이면서도 묵직한 사실성을 획득하고 난 후 모티브의 승화를 이끌어 내 그리움의 대상을 향한 끊임없아 끌어당겨 그 엄마는 내게 감정의 소모가 아니라 창작의 원동력이 되어, 화면 속 덩어리진 형태와 붓질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불꽃이 되는 것입니다.
새벽 산책의 영감-오랜 세월 매일 아침 자연을 마주하며 걷는 루틴은 창작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나는 매일같이 산책을 하며 치유받고,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습니다. 작업실은 늘 같은 그림과 생각 속에 나를 가두기에 충분하지만, 그곳을 벗어나 걷기 시작하면 비로소 숨을 깊이 쉬고 다른 세상을 바라볼 여유가 생깁니다. 걷는 동안 복잡했던 생각들이 조금씩 풀리고, 마음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37살 때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27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외국에서 전시를 하거나 여행을 떠나서도 나는 늘 걷습니다. 걷고, 생각하고,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자연과 마주하는 그 시간이 내게는 무엇보다 깊은 치유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산책은 나에게 단순한 운동이나 영감을 얻는 방법이 아닙니다.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나 자신을 다시 믿게 하며, 삶에 대한 희망을 되찾게 하는 명상과도 같은 행위입니다.
그래서 나는 걷습니다. 산책은 오랜 시간 나를 치유해왔고, 지금도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 중 하나입니다.
매체의 확장-캔버스를 넘어 다큐멘터리(영화) 작업으로 시선을 넓힌 이유는 무엇이며, 영상만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영상은 내가 생각하는 4차원의 세계와, 하나의 생각이 이전되고 변주되는 과정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회화가 한 화면 안에 응축된 시간과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영상은 그 화면을 넘어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고, 작품의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각과 풍경, 이미지, 움직임까지 함께 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영상 안에서 직접적인 작품의 원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떠오른 수많은 생각과 이미지, 풍경과 공간의 감각을 함께 펼쳐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작품에서 직접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작품 안에 잠재되어 있던 공간의 의지와 깊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상은 나에게 단순히 작품을 기록하는 매체가 아닙니다. 작품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고, 내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생각과 감각까지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입니다. 그 가능성이 너무나 흥미로워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다큐멘터리를 본 관객들 중에는 영상을 통해 내 작품을 이전보다 훨씬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매체의 확장이 작품에 대한 이해의 확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험이었습니다.
결국 영상은 작품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입니다. 하나의 작품에서 출발한 생각이 시간과 공간을 만나 새로운 이미지와 의미로 변주되고, 다시 관객의 생각 속에서 또 다른 세계로 확장되는 것. 나에게 영상은 그렇게 더 깊은 영감을 만들어내는 아주 중요한 예술적 확장의 기회입니다.
작업실의 태도-홀로 캔버스 앞에 마주 섰을 때, 가장 엄격하게 지키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원칙은 무엇인가요?
나는 늘 캔버스 앞에서 나 자신에게 솔직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진실하지 않은 작품을 한다면 결국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꾸밈없이 내면을 바라보고, 그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성실하게 담아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수록 작품에는 자연스럽게 깊은 울림이 생기고, 그것이 작품을 끝까지 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그린 그림은 억지로 깊어지려 하지 않아도 깊어집니다. 그렇게 쌓인 시간과 마음이 어느 순간 작품 안에서 너울너울, 평화롭게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40년의 변곡점-40년이 넘는 창작 여정 속에서 가장 결정적인 내면의 도약이나 변화는 언제 일어났나요?
3년 전부터 내 그림에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이 오래도록 아른거렸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내 삶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화면 안에 아주 작고 미세한 인체들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체를 수없이 쌓아 올리고 응축시키면서, 마치 수만 명의 삶을 한 화면 안에 담아내듯 그렸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그리는 동안에는 내 안의 고통이 조금씩 가라앉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어느 순간 고통스러운 노동이 되었습니다. 마치 내가 삶의 무게와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노동의 고통은 오히려 나를 다시 숨 쉬게 했습니다. 손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고, 끊임없이 화면을 채워가는 그 시간이 나를 살아 있게 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죽음은 더 결정체로 작품의 집적 인간을 거기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고통을 발산하는 계기가 됩니다.
뉴욕 첼시의 울림-세계 미술의 중심인 뉴욕 첼시에서 관람객들과 마주할 때, 가장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멀리서 바라보면 나의 그림은 하나의 추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안에는 수많은 인간의 형상이 아주 작고 미세하게 집적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화면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과 시간, 그리고 나의 수행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삶의 풍경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보이지 않는 씨실과 날실이 서로 얽히고 또 얽히면서, 때로는 복잡하고 고통스럽게 이어져 갑니다. 우리는 그 얽힘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를 떠나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마치 끊임없이 산을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우리는 매일 자신의 삶을 다시 짊어지고 걸어갑니다.
나는 그 지난한 과정을 작은 인간의 형상으로 수놓듯 그립니다. 고통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견디고, 반복하고, 그려내는 수행을 통해 스스로를 조금씩 정화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그림이 누군가에게도 하나의 치유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동안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남아 있는 상처와 슬픔을 스스로 어루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때로 먼지처럼 아주 가벼운 존재로 살아가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거대한 산처럼 묵직한 울림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삶을 그리고 싶습니다. 수많은 인간의 집적 속에서, 고통을 견디며 스스로를 치유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기억되고 싶은 모습-시간이 흘러 훗날 미술사와 대중에게 작가 김영미의 예술과 삶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삶은 어쩌면 한 장의 직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늘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수많은 인연과 시간의 실이 얽히고 풀리면서 우리의 삶은 조금씩 한 장의 천처럼 완성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견뎌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 있고, 그럼에도 쉽게 꺾이지 않는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삶은 때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거대한 산과도 같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 순간들이 결국 우리에게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겠지요.
예술도 그런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예술이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술은 늘 우리의 곁에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 위에도, 바람과 빛 속에도, 한 사람의 마음과 평범한 하루 속에도 조용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나는 거창한 예술가로 기억되기보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가 내 작품을 바라보며 ‘예술이 늘 내 곁에 있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바람결에 조용히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특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오래 마음에 남는 것. 누군가의 삶에 잔잔한 위로와 편안함으로 머무는 것. 그런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