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낙태 금지법에 주 경계 넘는 ‘원정 낙태’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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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금지 반대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로이터>

불법 낙태 소송 보상금에 현상금 사냥꾼까지 등장 예고
낙태 원하던 텍사스 여성, 태아 박동 들리자 울음 터트려

텍사스주에서 사실상 낙태를 금지하는 법이 발효되자 주 경계를 넘어 원정 낙태에 나서는 상황이 현실화하고 있다.

또 불법 낙태 시술 의료진과 그 조력자를 확인해 소송을 제기하면 1만 달러(1천100만여 원) 보상금을 지급하는 조항이 마련되면서 이를 노린 현상금 사냥꾼도 등장할 태세다.

2일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텍사스주는 1일부터 사실상 낙태를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면서 큰 혼란에 빠졌다.

‘심장 박동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낙태 금지 시기를 20주에서 태아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6주로 앞당기는 내용을 담았다. 임신 6주 차는 여성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워 사실상 낙태를 원천봉쇄하게 된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이렇다 보니 텍사스주 병원 곳곳은 법 시행 직전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이 몰려들면서 대혼란이 빚어졌다.

포트워스의 한 낙태 클리닉에는 법 시행 전날인 8월 31일 여성 117명이 찾아왔다. 하지만, 새 법에 따라 임신 6주가 지나지 않은 10%의 여성만 낙태 시술을 받았고 의료진은 눈물을 흘리며 밤 11시 56분 마지막 시술을 마쳤다.

낙태를 원해 오스틴 병원을 찾은 한 여성은 초음파 검사 결과 아기의 심장박동 소리가 확인되자 울기 시작했다고 텍사스 트리뷴은 전했다.

휴스턴의 한 낙태 병원에선 법 발효 직전 400통의 전화가 폭주했고 더는 환자 예약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 병원은 임신 6주가 지난 여성들에게 텍사스주를 떠나야 한다며 휴스턴에서 차로 7시간 30분 떨어진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낙태 클리닉을 안내했다.

원정 낙태는 벌써 현실화하고 있다.

텍사스주와 인접한 다른 주의 낙태 클리닉에는 텍사스 출신 여성 환자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클라호마와 캔자스주에서 낙태 클리닉을 운영하는 ‘트러스트 우먼’은 “텍사스주 낙태 금지법 시행 몇 주 전부터 환자가 증가했다”며 “우리는 낙태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치료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낙태 찬성단체를 이끄는 알렉시스 맥길 존슨은 “위헌적인 낙태 금지법 때문에 텍사스의 700만 명 가임기 여성이 낙태 접근권을 상실하게 됐다”며 “여성들이 낙태를 위해 수백만 마일을 여행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신 건강 문제 연구단체 구트마허 인스티튜트는 법 시행 이전 텍사스 여성이 낙태 클리닉까지 가는 평균 거리는 12마일(약 20㎞)이었으나 법 발효 이후 원정 낙태 여성의 이동 거리는 20배나 먼 248마일(약 400㎞)로 늘어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낙태 반대 단체들은 새 법 시행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불법 낙태 감시 활동에 착수했다.

포트워스 낙태 클리닉 바깥에는 낙태 반대 시위대가 몰렸고 이들은 클리닉을 오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거나 자동차 번호판을 기록했다. 향후 소송을 걸 수 있는 기본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 낙태 금지법은 불법 낙태를 시술하거나 이를 방조한 모든 사람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임신 6주 이후 여성이 낙태 시술을 받을 경우 병원 의료진뿐만 아니라 환자를 병원까지 실어나른 우버 운전기사, 낙태 수술비를 지원하는 자선단체, 낙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가족과 친구도 소송 대상이 된다.

뉴욕대 법대 멀리사 머레이 교수는 “만약 스타벅스 직원이 임신 6주 이후 여성의 낙태 사실을 엿듣게 된다면 그 직원은 병원과 여성을 도와준 다른 사람을 고소할 권한이 있다”며 소송 남발 가능성을 지적했다.

특히 이 법은 불법 낙태 병원 등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시민에게 최소 1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해 이른바 현상금 사냥꾼이 등장할 길도 열어놨다.

실제로 낙태 반대론자들은 법 제정에 환호하며 온라인 불법 낙태 신고센터를 만들었다.

낙태 반대단체 ‘텍사스 생명권’ 트위터에는 한 회원이 “방금 낙태 클리닉에 한 남자가 여자를 태우고 가는 것을 봤다”며 “현상금을 받게 되느냐”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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