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시 태어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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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예수님은 밤에 찾아온 유대 사회의 영적 사회적 지도자 니고데모와 깊은 대화를 나누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주님의 첫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니고데모의 고민을 역추적해 볼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그야말로 율법의 사람이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 법을 100% 완전하게 지킬 수 없고, 그래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는 겁니다. 전지하신 주님께선 그의 마음에 드리운 그늘을 정확히 캐치하셨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겁니다. 거듭남이 그 답이라는 겁니다. ‘거듭나다’라는 헬라어의 원래 뜻은 ‘위로부터 거듭나다’ 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이 거듭나는 일은 위 즉 하늘로부터 오는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새롭게 다시 태어난 삶은 어떤 삶이고, 위로부터 오는 힘은 뭘 까요?

주님께선 먼저 위로부터 오는 힘이 무언지를 설명하십니다. 주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로 난다는 말은 육으로 나는 겁니다. 즉 부모의 육체적인 결합을 통해 이 땅에 생명체로 태어나는 걸 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성령님을 통해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겁니다. 자 이제 위로부터 오는 힘이 확실해졌습니다. 바로 성령님입니다. 주님은 성령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바람에 비유해서 설명하십니다. 바람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일으키는 물리적인 현상들을 통해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낙엽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 귓전을 때리고 가는 소리 등으로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겁니다. 성령님도 볼 수는 없지만, 성령님이 거듭나게 하신 인생의 변화를 통해서 그 존재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가끔 자신이 구원받은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구원받은 겁니다. 말씀과 기도 생활을 기뻐하고, 예배를 사모하고, 교회를 사랑으로 섬기고 있다면 구원받은 겁니다. 성령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들이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난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주님은 니고데모가 잘 아는 구약의 사건을 매개체로 삼아 그 답을 주셨습니다. 민수기에 등장하는 놋뱀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한 백성들을 불뱀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그냥 두면 다 죽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주님은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고,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모세의 중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선 장대에 놋뱀을 만들어 달고 높이 들어올려 백성들에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놋뱀을 바라본 자들만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주님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실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해결책을 믿어야만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놋뱀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해주신 겁니다. 주님께서 들려야 한다는 표현엔 3가지 뜻이 들어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또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 내기 위해 무덤에서 일어나신 것, 하늘과 땅의 권세를 회복하시고 천국에 올라가신 것을 다 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들리신 이 3가지 사건을 다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거듭난 영의 삶이란,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삶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으로 변화된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삶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거듭남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누릴 복을 잔뜩 담고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거듭남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려드리고, 아직도 이 선물을 모르는 자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