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욕심을 버리면 행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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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65년을 살았던 사람이 “ 내 생애에서 행복한 날은 6일 밖에 없었다. “ 라고 고백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한 때는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이다. 권력을 쥐고, 천하를 호령 했던 그가 남긴 말이지만 초라해 보인다. 이래서 행복의 척도라는 것은 생각하고 느끼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행과 불행이 달라짐을 우리에게 남겨 준 말 같다. 나폴래옹은 대륙봉쇄령을 시행하므로서 물자부족과 생필품 부족을 초래 하였다. 이것이 나폴레옹을 쇠락을 길로 인도 한 이유 중에 하나이다. 이 보다 60년 후에는 조선의 대원군이 쇄국정책이라는 것을 시행했다. 봉건 왕조를 지키게 되는 유일한 방법으로 이해를 했기에 그런것이다. 그 결과 국제적인 고립을 초래 하였다. 이렇게 독선적으로 생각이 달라지면, 불행이라는게 찾아 오게 됨을 역사를 통해서 알게 되는 거다.
지난번 한국의 선거 때에 복지 예산을 높인다는 공약들을 마구 쏟아 내었다. 복지 정책이 잘 된다고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아 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꼭 버려야 할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욕심이다. 욕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해 지지 않는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기에 불행해지는 것이다. 주기보다는 받기만을 원하고, 손해보다는 이익을 바라며, 노력 보다는 행운을 바라는 사람에겐 절대로 행복은 오지 않는다. 진정으로 행복해 지고 싶으면, 내것을 좀더 주고, 내가 좀더 손해를 보고, 내가 좀더 노력을 하려는 인간 본연의 본능을 잠시 피해서 가게 되면 알게 된다. 행복하지 않다고 스스로 느끼는 사람은 자기의 삶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내일이 6월 1일 이다.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난 Helen Keller 가 87세에 사망한지 54주년이 되는 날이다. 헬렌 켈러가 살아 생전에 그 녀가 원 했던 희망사항이 있었다. 눈 멀고, 귀 안들리고, 볼수 없는 눈을 가졌지만, 단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기를 원 했다. 첫째날은 사랑하는 설리번 선생의 얼굴을 보고, 둘째 날은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기적을 보리라. 셋째 날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싶다. 라고 했다. 참으로 소박한 희망사항이다. “”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 이 말은 헬렌켈러가 눈 뜨고 사는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누구에게나 행복할 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 뿐이다.
노년들의 세계를 들여다 보면, 먼저 건강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노년에 건강한 사람이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만해도 잘 살아온 사람이라 칭하고 싶다. 행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며,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누가 채우 주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없는 것은 없는데로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각자의 마음 속에 고요하게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고 편안함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행복이다. 행복은 밖에 있는게 아니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데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보지를 못 할 뿐이다. 행복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만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하는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욕망과 욕심이란 단어가 있다. 이 두가지가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게 된다. 좋은 욕망은 성장과 발전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탐욕(욕심)의 결과는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 인간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성장하는 욕망의 존재이며, 나중엔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욕망 한다. “ 이는 불란서의 철학자인 자크 라캉 ( Jacques Lacan ) 이 주장한 말이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괴로워 하는 것은 모두가 욕심 때문이다.
노년의 개인에게는 삶의 정답은 없다. 오로지 욕심 없는 행동만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 만이 정답인듯 하다. 자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면 영원히 행복의 맛을 모르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