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천 박사의 손자병법인문학] 낙하산 인사가 나라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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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략리더십 연구원장 노병천

민족치욕의 역사, 쌍령전투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 ― 『손자(孫子) 시계 제1편』

“툭!” 이게 무슨 소린가? 갑자기 하늘에서 낙하산이 떨어지는 소리다. 낙하산 인사가 나라를 망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 있다면 ‘제대로’ 된 사람을 ‘제대로’ 뽑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람을 제대로 뽑았다면 일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사람을 제대로 뽑기란 참으로 어렵다. 피상적인 관찰이나 공식 프로필만으로 그 사람의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을 잘못 뽑으면 그가 지닌 직책의 고하에 따라 많은 사람이 고통 받게 되고, 조직과 나라의 근간마저 흔들릴 수도 있다. 제대로 된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에 사무치게 보여주는 전례가 있다. 바로 쌍령(雙嶺)전투다.

병자호란 때 일어난 쌍령전투는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 민족사에서 어쩌면 가장 치욕스러운 전투라 하겠다. 인조 14년(1636년) 12월 청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2차로 조선을 침공했다. 기병을 보유한 적의 빠른 진격 속도에 미처 달아나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에 갇혀 구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 인조를 구원하기 위해 4만 명(숫자는 여러 설이 있음)에 달하는 조선군이 북상했다. 지휘관은 경상좌병사 허완과 경상우병사 민영이었다. 조선군은 임진왜란 당시보다 훨씬 개량된 조총 1정씩을 보유하고 있었다. 1637년 1월 3일, 오늘날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리 일대에서 이들은 청나라군과 마주쳤다. 그런데 청나라군은 불과 기병 300여 기(혹은 더 많은 수)였다. 4만 명의 조총수와 300여 기의 기병. 언뜻 보기에 승패는 갈라진 듯했다. 조선군은 2만씩 나누어 민영은 오른편 산등성이에, 허완은 왼편 낮은 곳에 진을 치고 목책으로 둘렀다. 이때 조선군에 지급된 화약은 2냥이다. 2냥이면 대략 10발의 탄환을 발사할 수 있다. 조선군이 진을 친 뒤엔 오히려 청군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가진 조선군에 먼저 공격을 가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있었던 청군이 낮은 곳에 있던 조선군을 내리 덮쳤던 것이다. 조선군은 몹시 당황하고 놀랐다. 조총을 제대로 쏘기 위해서는 사거리를 감안해 적들을 충분히 근접시킨 뒤에 사격을 해야 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적을 보자마자 마구 쏘아댔다. 설상가상으로 장수들 역시 경험이 없어 화약 배분을 잘하지 못해 금방 화약이 동이 나고 말았다. 선봉 33명에 의해 조선군의 화약이 모두 떨어진 것이다. 화약이 떨어져 막대기 같은 조총을 들고 우왕좌왕하는 조선 병사들 머리 위로 나머지 청나라 기병들이 뛰어올랐다. 대혼란에 빠진 조선군들은 서로 도망치기 바빴다. 이 와중에 4만 병사 중 절반이 넘는 병사가 청나라 기병들의 칼에 맞아 죽은 게 아니라 먼저 도망치려는 아군에 깔리고 밟혀 죽었다. 병자남한일기에 보면 “도망가다 계곡에 사람이 쓰러져서 쌓이면서 깔려 죽었는데 시체가 구릉처럼 쌓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압사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경상좌병사 허완도 깔렸다. 그도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허망하게 전사한 것이다. 남급이 쓴 병자일기(丙子日記)에선 더 나아가서 “흩어진 병사들이 목책에 도달했으나 목책을 넘지 못하고 넘어지면 그 뒤로 계속 시체가 쌓였고, 목책을 넘은 병사는 목책 밖이 험준해 추락해서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오른편 산등성이에 있던 경상우병군은 화약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불똥이 떨어져 대폭발이 일어났는데 장수 2명이 죽고 진영이 크게 동요되었다. 호기를 만난 청나라 기병들이 덮쳤고 이 과정에서 경상우병사 민영이 전사했다. 마음 아픈 일이다. 결과적으로 청나라 기병 300 대 조선군 4만, 즉 청나라 기병 한 명이 133명의 조선군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조선군의 패인은 단지 화약이 떨어졌다는 것만이 아니다. 조선군은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해 허기져 있었고, 훈련 또한 제대로 되지 못한 오합지졸 같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장수의 입장에서는 쌍령의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지 못하고 밀집 대형으로 배치하는 등 전략적 안목이 부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패닉(panic), 즉 공황(恐惶)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총체적 리더십 부재의 결과다. 허완이나 민영은 그동안 특별한 능력이 없어 변방을 돌다가 인조반정에 편승해 이른바 낙하산으로 진급한 사람들이었다. 연려실기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허완은 나이가 많고 겁에 질려서 사람을 대하면 눈물을 흘리니 사람들이 그가 반드시 패할 것을 알았다.” 물론 연려실기술은 그 자료의 신빙성이 많이 떨어지는 야사의 기록이긴 하지만 참고는 할만하다. 무능한 인물이 중책에 임명되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쌍령전투다. 조직이 성공하려면 모름지기 사람을 잘 뽑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하는가?

손자는 시계(始計) 제1편에서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지(智), 신(信), 인(仁), 용(勇), 엄(嚴)이 그것이다. 이를 오덕(五德)이라 부른다. 제일 먼저 지(智)가 나왔다. 지는 ‘사물의 실상(實相)을 관조(觀照)해 미혹을 끊고 정각(正覺)을 얻는 힘’으로 풀 수 있다. 지는 배의 키와 같다. 나아갈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다. 만약에 리더에게서 지가 부족하다면 그가 이끄는 조직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며, 자칫 암초에 걸리거나 낭떠러지에 떨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지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앞에 위치하고 있다. 리더의 두 번째 자질은 신(信)이다. 신은 신뢰와 믿음이다. 리더는 어떻게 해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줄 수 있는가? 크게 세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로 리더의 솔선수범(率先垂範)이다. 둘째로 리더의 언행일치(言行一致)다. 신(信)은 사람(人)과 말(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이 한 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로 신상필벌(信賞必罰)이다. 리더는 상벌의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 친하다고 해서 상을 주면 안 되고, 귀하다고 해서 벌을 생략하지 않아야 한다(賞不私親 罰不避貴). 리더의 세 번째 자질은 인(仁)이다. 인은 자비로움이다. 부하를 아끼는 마음이다. 아랫사람들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알고 그들과 노고를 같이하는 것이다(知人飢渴同人勞苦). 리더의 네 번째 자질은 용(勇)이다. 용은 용기를 말한다. 기회를 보면 즉시 행하고, 적을 만나면 두려움 없이 즉시 싸우는 것이다(見機卽發 遇敵卽鬪). 리더의 다섯 번째 자질은 엄(嚴)이다. 엄은 엄격함을 말한다. 군을 다스림에 있어 정돈돼 있고, 호령이 일사불란해 하나같이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軍政整齊 號令如一). 리더가 왜 엄격해야 하는가? 성과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명백히 정리했다. “유능한 리더는 사랑받고 칭찬받는 사람이 아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올바른 일을 하도록 하는 사람이다. 인기는 리더십이 아니다. 리더십은 성과다.” 달성을 위해 리더가 엄해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智 信 仁 勇 嚴
지신인용엄
지혜, 신뢰, 사랑, 용기, 엄격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느닷없이 허완이나 민영과 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하산 인사가 많아졌다. 리더로서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면 그 조직은 망하게 되어 있다. 아인슈타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지혜롭고 심지가 곧은 몇몇 친구들을 꼽겠다.”고 했다. 우리 회사 상사와 사원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아인슈타인이 꼽는 친구처럼 지혜롭고 심지가 곧은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

인격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