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문화산책] 트로이 목마(木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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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

성지 순례단(巡禮團)에 참가하여 2주 동안 터키와 그리스엘 다녀왔다. 원래의 순방 행선지는 사도 바울의 선교 발자취를 따라 소아시아의 초대 일곱 교회 유적지와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집필하였다는 밧모섬(Patmos)을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도중에 풍랑이 심해 배가 뜨지 않아 결국 트로이(Troy)로 노정이 일부 바뀌게 되었다.

바로 호머(Homer)의 서사시 ‘일리아드’(Iliad)에서 트로이 전쟁(Trojan War)이 벌어졌던 역사적인 현장으로 이스탄불에서는 220 마일 남서 쪽, 에게해에서 흑해로 연결이 되는 좁은 다르다넬즈(Dardanelles Strait) 해협 입구, 갈리폴리 반도 건너편 히살리크(Hissarlik) 언덕으로 남쪽 10 마일 지점에 있는 바울이 마게도냐(Macedonia)로 가라는 환상을 봤다는 유사한 이름의 드로아(Troas)와는 구별되며, 현지에서는 Truva로 불리어지고 있었다. 트로이를 한낱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가공(架空)의 장소로부터 실제 역사적인 현장으로 탐사 발굴하여 증명해낸 사람이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이다. 나는 대학시절 트로이를 발굴하여 절세의 미녀 헬렌의 황금장신구를 찾아내 부인 소피아의 몸에 걸어 준 학보에 실린 슐리만의 사진과 기사를 읽고서 언젠가 트로이를 한번 가봐야 되겠다는 막연한 바램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드디어 40여 년만에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Brad Pitt 주연 ‘Troy’의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에서 보듯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눈이 맞아 도망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을 되찾기 위해 아가멤논을 그리스 원정군 총 사령관으로 하여 900여 척의 배에 6만여 명의 그리스 연합군단이 참전한 10년간에 걸친 트로이 성 공략 중 마지막 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24장으로 나눠 총 15,693 행의 서사시로 서술한 것이 서구 문학사 고전 중의 백미로 꼽히는 ’일리아드‘이다. 이 작품을 통해 드디어 희랍 신화의 체계가 정립된다. 실지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 해를 대략 B.C.1275-1260으로 보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시기는 또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던 출애굽 사건과도 연대적으로 거의 일치한다. 호머는 지방을 떠돌아다니며 군중들에게 시를 읊어주던 음유시인(Scop)으로 간주되며 기원전 800 년경에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해변에서 살았다니까 당시에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방대한 양의 전쟁 이야기를 서사시(Epic)로 재구성해서 암송으로 후대에 전해준 셈이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트로이를 발견한 슐리만은 독일의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식료품 가게의 점원과 사환 등을 전전하며 춥고 배고픈 고달픈 삶을 살았지만, 독학으로 10여 개 외국어에 능통하게 되었고, 이니에스(Aeneas)가 아버지를 업고 불타는 트로이 성을 빠져 나오는 삽화를 보고 트로이 전쟁의 유적지를 발굴하겠다는 어릴 적 결심과 꿈을 일생동안 포기하지 않고 결국 사업에 성공하여 실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