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감염병은 물론 암·치매·심장병 위험까지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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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워싱턴포스트 특약 건강·의학 리포트
▶ H PV·대상포진·B형 간염 백신 등 만성질환·일부 암 예방
▶ 예방접종자들 치매·심혈관 질환·간암 발생률이 더 낮아
▶ “연령과 건강 상태에 맞는 정기적인 백신 접종을” 권고

백신은 특정 감염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증상을 덜 심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부 암을 포함한 흔한 만성 질환을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말한다. 예일대 의과대학의 최고 의료책임자이자 감염병 전문의인 리처드 마티넬로 박사는 “우리는 이제 이 백신들이 단순히 특정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훨씬 더 폭넓은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암 외에도 점점 더 많은 연구 결과에서 백신이 치매와 심장 질환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백신은 이미 만성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음은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일반적인 백신들이다.

■ HPV

인유두종바이러스(HPV)를 예방하는 백신은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암 예방 백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피부 접촉, 특히 성 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흔한 감염인 HPV는 대부분의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되며, 그 외에도 많은 하부 생식기 암과 특정 두경부암을 유발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약 20년 전 백신이 도입된 이후 HPV 감염률, 암 전 단계의 초기 징후, 그리고 자궁경부암 발생률이 감소해왔다. 2024년에 약 35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예방 접종을 받은 사람들에서 HPV 관련 암 발병 사례가 더 적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25세 미만 여성의 자궁경부암 사망률이 최근 몇 년 동안 6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구진은 이처럼 큰 폭의 감소가 백신 접종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전국감염병재단의 의료 책임자인 로버트 홉킨스 박사는 HPV 백신이 9세에서 26세 사이의 모든 청소년에게 접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백신은 45세까지도 접종할 수 있지만, 나이가 많을수록 효과가 떨어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15세 미만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2회 접종이 권장된다. 15세에서 26세 사이이거나 면역 체계가 약한 사람들에게는 3회 접종이 필요하다.

■ 대상포진

대상포진 백신 접종은 치매와 심장병 위험 감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상포진(헤르페스 조스터)은 수두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 수두에서 회복된 이후에도 그 바이러스는 몸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신경계에 잠복해 있다. 일부 사람들에게서는 이 바이러스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 발진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약 100만 명이 대상포진에 걸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일부의 경우 대상포진은 평생 지속되는 만성 통증이나 시력 손실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대상포진 백신은 50세에서 69세 성인에서 대상포진을 예방하는 효과가 97%에 달한다. 여러 대규모 연구에서 대상포진 백신과 치매 위험 감소 사이의 연관성이 보고된 바 있다. 웨일스에서 28만 명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서는 백신 접종을 받은 사람들이 7년 동안 치매에 걸릴 확률이 20%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연구에서는 이 백신이 뇌졸중, 심부전, 관상동맥질환과 같은 심혈관 사건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도 시사한다. 50세 이상 한국인 100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서는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심장 질환 위험이 23%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CDC는 50세 이상 성인이나, 면역 체계가 약한 19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대상포진 백신 2회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 어린이용 수두 백신도 나중에 대상포진 발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 B형 간염

B형 간염 바이러스는 나중에 간 질환과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주요 위험 요인이다. 혈액, 정액 또는 기타 체액을 통해 사람 간에 전파되는 이 바이러스는 성접촉, 주사 바늘 사용 및 출산 과정에서도 감염될 수 있다.

급성 B형 간염은 바이러스 노출 후 처음 6개월 이내에 발생하는 단기 질환일 수 있다. 이 경우 일부 사람들은 아무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증상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간 감염은 평생 지속되는 만성 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며, 치료하지 않으면 간경화나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CDC는 모든 영아가 출생 시 B형 간염 백신을 맞고, 생후 15개월 이내에 전체 접종을 완료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 백신은 최근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에 의해 공개적으로 의문이 제기된 소아 예방접종 권고 중 하나이기도 하다. 9월에는 케네디 장관이 직접 선발한 연방 백신 자문위원들이 B형 간염 백신 접종 지침을 변경해, 대부분의 영아에게 접종을 생후 1개월 이후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후 해당 표결은 보류됐다.

한편, 많은 감염병 전문가들과 백신 전문가들은 30년 이상 유지되어 온 기존 권고안을 계속 지지하고 있다. 마티넬로 박사는 “신생아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접종받도록 보장하고, 이 바이러스뿐 아니라 수십 년 후 생길 수 있는 암으로부터도 인구를 보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 접종하지 않았다면,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어라도 이 백신을 맞아야 한다.

■ 독감, 코로나바이러스, RSV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은 심각한 질병뿐만 아니라 기존 만성 질환의 악화나 재발을 방지하는 데에도 중요하다고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감염학회(IDSA) 전 회장인 티나 탄 박사는 “만성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독감 백신 접종은 매우 중요하다”며 “독감에 걸리면 기존 질환이 악화되고 추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20년 한 연구에서는 울혈성 심부전, 관상동맥질환,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천식, 당뇨병, 신장 질환 등 특정 만성 질환을 가진 성인들 사이에서 심각한 독감 감염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CDC는 생후 6개월 이상의 모든 사람이 매년 독감 백신을 맞을 것을 권장한다. 홉킨스 박사는 만성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코로나바이러스와 RSV(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 백신도 접종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성인 4,6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코로나 백신을 맞은 뒤 심장마비와 뇌졸중 발생률이 감소한 것으로 관찰되었다. 이 백신은 심근염과 심낭염(심장 근육과 심장 막의 염증) 위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사례는 드물고 대부분 경미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특히 만성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심각한 감염에 더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예방접종의 이점이 부작용의 위험보다 크다고 말한다.

코로나 백신은 나이나 건강 상태와 상관없이 맞을 수 있지만, CDC는 현재 먼저 의료진과 상담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RSV는 어린이와 노인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홉킨스에 따르면, RSV 예방접종은 영아,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임산부, 만성 질환이 있는 50~74세 성인, 그리고 75세 이상의 모든 성인에게 권장된다.

■ 세균성 백신

홉킨스 박사에 따르면 수막염과 폐렴과 같은 세균 감염도 만성 장애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막염의 합병증은 매우 심각할 수 있다. 메이요 클리닉에 따르면, 감염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치료를 받지 않을수록 청력 상실, 시력 문제, 기억력 저하, 학습 장애, 뇌 손상, 발작, 신부전 등 다양한 문제의 위험이 커진다.

폐렴은 우울증과 같은 장기적 영향은 물론, 심장 및 혈관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 미국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는 이 질병이 장기에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지 않거나 면역계가 감염에 부정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신장, 간, 심장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세균성 수막염과 폐렴은 모두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에 따르면, 패혈증 환자 중 일부는 신속한 치료를 받을 경우 완전히 회복되지만, 다른 일부는 불면증, 악몽 또는 환각, 공황 발작, 관절 및 근육통, 인지 기능 저하, 장기 부전 등 장기적인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

CDC가 모든 사춘기 전 아동과 청소년, 그리고 고위험군 어린이 및 성인에게 권장하는 수막구균 백신은 수막염을 유발하는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5세 미만 어린이와 50세 이상의 성인은 폐렴은 물론 수막염과 패혈증을 포함한 다른 감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는 폐렴구균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b형(Hib) 백신 또한 수막염과 폐렴을 예방할 수 있다.

홉킨스 박사는 “백신은 접종을 받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보호 효과를 제공하며, 일부는 아직 접종을 받지 않은 지역사회 구성원들까지 보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는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질병들이 한때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왔는지 직접 경험한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하지 않을 때의 위험이 과소평가되기 쉽다”고 덧붙였다.

<By Allyson Chi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