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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ly 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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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한인 개척자들] 24. 월터 손 일리노이 한인부동산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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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손 일리노이 한인부동산인협회 전 회장. <사진 윤연주 기자>

“좌우를 넘어 하나로” 정직과 화합으로 공동체를 잇다
25년간 시카고 교통국 근무, 한인 최초 관리직 임용
한인 부동산 선진화·전문화에 기여
일리노이 한인부동산인협회서 20여 년 봉사
한발협·평통·한인회·문화원 등에서 한인사회 발전에 기여

2001년 일리노이 한인부동산인협회 송년의 밤 행사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손 회장.

[편집자주]
본보는 ‘시카고 한인 개척자들’ 연재를 통해 한인사회 곳곳에서 삶과 봉사의 흔적을 남긴 원로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번 인물은 엘리트 부동산 대표이자 일리노이 한인부동산인협회 전 회장·이사장 및 현 상임고문, 한인사회발전협의회 회장, 민주평통 자문위원, 시카고 한인회 부이사장, 시카고 한인문화원 이사, 상공회의소 이사 등을 지낸 월터 손(한국명 손택천) 회장이다. 평생을 ‘정직과 신용’이라는 철저한 원칙으로 비즈니스를 일구고, 분열의 순간마다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온 손 회장의 개척 여정을 따라가 본다.

◇ 진영 넘어 화합의 길로

인터뷰 전날인 6월 28일, 월터 손 회장은 일리노이 홀로코스트 뮤지엄(Illinois Holocaust Museum)을 찾았다.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을 조직적으로 박해하고 학살한 인류사의 비극이다.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된 이 참혹한 역사는 증오와 차별, 침묵이 한 사회를 어디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로 남아 있다.

일리노이 홀로코스트 뮤지엄은 이 비극을 기억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공간이다. 전시관에는 유대인들이 겪은 박해와 강제수용소의 참상, 생존자들의 증언이 담겨 있다. 손 회장은 그곳을 둘러보며 한 민족의 고난이 어떻게 기록되고 교육되며 다음 세대의 힘으로 이어지는지를 깊이 생각했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유대인 공동체의 ‘결집력’이었다. 유대인들도 출신 지역과 정치적 견해, 세대와 문화가 서로 다르지만, 역사적 비극을 함께 기억하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고난을 잊지 않되 증오에만 머물지 않고, 교육과 경제, 정치와 문화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키우며 미국 주류사회 안에 단단히 뿌리내린 모습은 손 회장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손 회장은 “유대인들도 소련계, 폴란드계, 독일계 등 내부적으로 여러 계파가 있고 알력도 있지만, 결국 하나로 묶어가는 힘이 있다”며 “그 참혹한 비극을 겪고도 주류사회에 탄탄히 자리 잡은 저력을 보며 왜 우리는 그것을 배우지 못하는가를 깊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었다. 시카고 한인사회 원로로서 오랜 세월 후배들의 버팀목이 되어온 그가 지금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은 오직 ‘화합’이었다. 최근 고국의 정치적 갈등과 그 여파로 갈라지는 동포사회를 바라보며 그는 “이념이나 진영보다 민족의 미래와 다음 세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손 회장은 “정치적 견해가 다를 수는 있지만, 그 차이 때문에 동포사회 안에서 서로 반목하고 원수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좌우를 가르기 전에 우리 민족과 다음 세대가 이 땅에서 함께 잘 살아갈 길을 먼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 한학과 신앙으로 세운 원칙

손 회장은 경상북도 포항과 경주 사이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단단한 내면은 부친의 한학 교육에서 비롯됐다. 한학자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그는 어려서부터 천자문, 명심보감, 동몽선습, 소학 등을 차례로 공부했다. 그 시절 몸으로 익힌 글과 도리는 훗날 인생의 든든한 주춧돌이 됐다.

손 회장은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운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자신감과 원동력이 됐다”며 “그때 마음 깊이 새긴 도리와 원칙이 훗날 부동산업을 일구고 한인 단체 활동을 이끌 때도 중요한 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신앙 역시 그의 삶을 이끈 또 하나의 큰 기둥이었다. 교회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는 그는 인생의 모진 고비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신다”는 온전한 믿음으로 버텼다. 이민 사회와 교회 안팎에서 수많은 시련과 핍박도 마주했지만, 선한 의지로 나아가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확신만큼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손 회장은 “내가 선한 의지를 품고 움직였을 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길을 열어주신다고 믿었다”며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 믿음 하나를 가슴에 품고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경주고등학교 재학 시절의 모습.

학업에서도 남다른 두각을 나타낸 그는 경주고등학교 1학년을 마칠 무렵 전체 360명 중 2등을 차지했다. 그의 명석함을 눈여겨본 서울 용문고등학교가 그를 전액 장학생으로 불러들였고, 그는 홀로 서울로 올라와 학업을 이어갔다. 용문고 시절에는 학생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일찍이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당시 학교에 파견 나와 있던 육사 교관들이 그의 든든한 풍채와 통솔력을 보고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적극 권유했으나, 그는 군인의 길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신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법률’과 ‘건축’이었다. 훗날 일리노이 주정부의 부동산 감독 기구에서 법과 규정을 다루며 공정하게 행정을 처리하게 된 배경에는 젊은 시절 품었던 법률에 대한 관심이 맞닿아 있었다.

군 복무 당시 모습. 손 회장은 800부대 정보 계통에서 복무했다.

◇ 영동 개발 현장서 품은 부동산의 꿈

미국으로 오기 전, 그는 한강 이남 개발이 막 시작되던 시절의 영동(현 강남)과 한남동 일대의 개발 현장을 경험했다.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가 놓이기 전, 겨울이면 얼어붙은 강 위로 수레가 다니고 봄이면 나룻배를 타고 건너던 때였다. 그곳에서 그는 직접 집을 짓고 분양하며 현장을 익혔다. 땅값이 하룻밤 사이에 치솟던 개발의 흐름 속에서 그는 부동산과 건축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몸소 배웠다.

손 회장은 “그때 부동산에 대한 강한 향수가 가슴 깊이 남았다”며 “미국이라는 더 넓은 땅에 가서도 언젠가 이 분야를 제대로 일구어보겠다는 꿈을 늘 품고 살았다”고 말했다.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1975년 말 미국에 온 그는 보스턴에서 2년간 공부했고 졸업 후 시카고에 정착했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땅에서의 시작은 쉽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물러서지 않는 뚝심이 있었다.

손 회장은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이겨내겠다는 각오가 무엇보다 컸다”며 “거친 바람 앞에서도 쓰러지지 않겠다는 투지 하나로 미국 생활을 버텨내며 스스로 길을 만들어갔다”고 덧붙였다.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을 찾은 어린 시절의 자녀들.

◇ CTA 25년, 주류사회 시스템을 배우다

시카고에 정착한 그는 1978년 9월 시카고 교통국(CTA)에 입사했다. 1만1천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기관에서 한인 최초로 관리직에 임용돼 2003년 3월까지 25년간 근무했다. 그는 메인터넌스 매니저 등 관리직으로 일하며 미국 주류사회 조직의 운영 방식과 시스템을 익혔다.

CTA 근무는 그에게 미국 사회의 법과 절차, 조직문화, 주류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을 가르쳐준 현장이었다. 그는 성실성을 바탕으로 동료들과 원활한 유대관계를 맺었고, 대중교통 서비스 발전에 힘을 보태며 여러 차례 우수 표창을 받았다.

1970년대 시카고 교통국(CTA) 근무 당시, 동료와 함께한 사진.

하지만 그의 안에는 늘 부동산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었다. CTA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는 부동산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3~4년가량 부동산 일을 병행했다. 손 회장은 “당시 한인사회 부동산업은 지금처럼 전문화되어 있지 않았다”며 “한인 부동산업이 ‘복덕방’식 관행을 넘어 주류사회처럼 법과 신용, 전문성을 바탕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3년 3월부터 그는 ‘엘리트 부동산’ 대표로서 본격적인 부동산 길을 열었다. 주류사회에서 익힌 매니지먼트 경험과 한국에서의 건축·분양 실무를 결합한 출발이었다.

손 회장은 “한인 부동산업도 주류사회에 뒤처지지 않게 제대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부동산인은 고객의 가장 소중한 자산과 생계를 책임지는 이들인 만큼, 정직과 신용이 없다면 결코 오래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25년간 시카고 교통국(CTA)에서 근무한 뒤 은퇴 당시 CTA로부터 받은 기념 표지판. CTA 매니저에서 엘리트 부동산 대표, 일리노이 한인부동산인협회장으로 이어진 그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 갈라진 협회를 하나로 묶다

손 회장은 일리노이 한인부동산인협회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20년 넘게 활동해 왔다. 제10대와 11대 회장을 연임했고, 제12대와 제25대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도 상임고문으로 후배들을 돕고 있다.

그는 역대 임원들과 함께 200명이 넘는 한인 후배들의 부동산 면허 취득을 도우며, 한인 부동산인들이 주류사회 대형 회사로 진출하거나 독립 회사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협회가 둘로 갈라져 갈등을 겪던 시기였다. 그는 원로로서 이사장직을 맡아 두 단체가 다시 하나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중재에 나섰다.

손 회장은 “당시 협회가 두 개로 갈라져 반목을 거듭하고 있었다”며 “누군가는 그 깊은 골을 메워야 했기에 이사장 자리를 맡아 두 단체가 다시 하나의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고 말했다.

리더로서 그의 공사 구분도 분명했다. 민주평통 수석부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한 지인이 찾아와 고액의 대형 건물 매각 건을 단독으로 부탁했으나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손 회장은 “같은 단체 안에서 부동산업에 종사하며 열심히 뛰는 회원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간부인 내가 그 이권을 차지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다른 회원에게 양보했다”며 “그것이 내가 평생 지켜온 확고한 기준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후배 리더들을 향해 “단체의 장이나 간부 자리에 있을 때일수록 스스로를 더욱 엄격하게 돌아보고 조심해야 한다”며 “부동산업도, 커뮤니티 단체 활동도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신뢰와 원칙이 언제나 먼저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카고 부동산인협회 행사에 참석한 손 회장 가족. 손진희 권사는 아랫줄 가운데, 찰스 손 대표는 윗줄 오른쪽 첫 번째, 손 회장은 그 옆에 자리했다.

◇ 법과 원칙의 자리

그의 철저한 원칙주의는 일리노이 주정부 산하의 부동산 감독 업무에서도 드러났다. 손 회장은 2006년 5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일리노이주 금융·전문직규제국 산하 부동산 행정·징계위원회의 위원(Board Member)으로 활동했다. 이는 주지사가 임명하는 기구로, 10만 명이 넘는 일리노이주 전체 부동산 면허 및 자격증 소지자들의 업무를 엄격하게 감독하고 규율하는 자리였다.

그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적체된 부동산 관련 제소 건을 검토하고, 관련 법규 정비에도 참여했다. 지역 주민들이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부동산 법체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역할이었다. 주정부는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 2010년 감사장과 공로패를 수여했다

손 회장은 “부동산은 한 사람의 자산과 삶이 연결된 일”이라며 “그렇기에 부동산인은 무엇보다 정직해야 하고, 법과 원칙 안에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올곧은 헌신은 동포사회에서도 깊은 존경을 받았다. 일리노이 한인부동산인협회의 감사패와 공로패를 비롯해 시카고 한인회 봉사상·사회발전상·삼일절 민족상을 수상했으며, 민주평통 의장(대통령) 표창(2017)과 공로패(2019) 등 그간 쌓아 올린 수많은 영예가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한인사회발전협의회 회장 취임식에서 임원들과 함께한 모습.

◇ 커뮤니티를 이끈 땀방울

손 회장의 이름은 부동산업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카고 한인회, 시카고 한인문화원, 상공회의소, 체육계, 기독교방송국 등 한인사회가 필요로 하는 자리마다 그는 조용히 힘을 보탰다.

2004년 선거관리위원으로 시카고 한인회와 인연을 맺은 그는 이후 자문위원, 부이사장, 건축위원 등으로 봉사했고,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제34대 한인회 자문위원장을 맡아 한인회 활동을 지원했다. 이 기간 시카고 한인회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로부터 전국 최우수 모범상을 받았다.

200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주체전에서 시카고 선수단장을 맡은 손 회장(오른쪽 두 번째). 당시 시카고 선수단은 종합 2위 성적을 거뒀다.

시카고 한인문화원 초기 설립 과정에도 힘을 보탰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이사와 감사로 참여하며 동포들이 모은 기금이 실제 문화원 건물 매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함께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시카고 한인상공회의소 이사로 활동하며 광복절 거리축제 운영을 지원했고, 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음식, 전통을 타민족 주민들에게 알리는 데 함께했다.

스포츠와 신앙 공동체를 향한 봉사도 이어졌다. 그는 2007년 샌프란시스코 미주체전에서 시카고 선수단장을 맡아 힘을 보탰고, 선수단은 종합 2위의 성적을 거뒀다. 시카고한인축구협회 이사장과 시카고기독교방송국 집행이사·감사로도 활동했다.

필요한 곳에 가서 자리를 지키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다음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그가 한인사회 곳곳에 남긴 봉사의 방식이었다.

기독교 봉사단체 트레스디아스 활동 당시의 단체사진.

◇ 대접받기보다 먼저 길을 열다

시카고 동포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데 있어 ‘한인사회발전협의회(한발협)’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전·현직 단체장들로 구성된 협의회에서 그는 2007년 회장을 맡은 뒤 집행이사로 활동했고, 2015년부터 현재까지 다시 회장으로 단체를 이끌고 있다.

그는 협의회를 통해 미 연방 상·하원의원, 일리노이 주지사, 시카고 시장 등 현지 주류사회의 유력 정치인들을 초청해 포럼과 간담회를 열었다. 한인사회가 주류사회와 만나고, 목소리를 내며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길을 여는 자리였다.

단체 활동을 하며 그가 늘 경계한 것은 ‘대접받는 자리’였다. 손 회장은 “총영사가 새로 부임하면 단체장들이 관저에 가서 식사 대접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그것이 오히려 민폐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우리는 반대로 총영사관 관계자들을 식당으로 초대해 우리가 비용을 내고 대접했다”고 말했다. 그는 “단체 활동은 대접받는 자리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먼저 움직이고 길을 여는 자리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활동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는 제14기를 비롯해 제17기부터 제20기까지 자문위원, 부회장, 수석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를 지역사회와 주류 정치권에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북한 인권, 한류, 한식, 한반도 정세 등 한국과 관련된 주요 이슈를 설명하며 공공외교의 한 축도 담당했다.

그가 평통 활동을 통해 얻은 결론은 분명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공동 번영이라는 큰 목표를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남북이 갈등을 멈추고 평화가 정착되면 대한민국은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다”며 “정치적 잣대를 떠나 우리 민족도 서로를 배척하지 말고, 함께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 데일리 시장과 함께한 손 회장.

◇ 신뢰로 이어가는 2세 경영

손 회장의 쉼 없는 행보 뒤에는 오랜 세월 묵묵히 곁을 지켜준 아내 손진희 권사가 있었다. 부부는 신앙을 붙들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슬하의 1남 2녀는 각자의 자리에서 미국 사회에 뿌리내렸다. 특히 아들 찰스 손(한국명 손철승) 대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엘리트 부동산의 2세 경영을 맡고 있다.

아내 손진희 권사와 함께한 손 회장. 손 권사는 그의 이민 생활을 함께 걸어온 든든한 동반자였다.

손 회장은 아들의 경영 방식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그는 “우리 1세대가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맨땅에서 길을 열었다면, 1.5세인 아들은 영어와 미국식 시스템, 철저한 준법정신을 바탕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며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전문성이 한인 커뮤니티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모든 일을 앞에서 끌고 가기보다 차세대가 새로운 방식으로 더 나은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뒤에서 돕고 싶다고 했다. 협회도, 평통도, 회사도 마찬가지다. 자리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때로는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원로의 역할이라는 생각에서다.

사진 왼쪽부터 일리노이주 부동산 행정·징계위원회 위원으로 봉사한 공로로 일리노이주 금융·전문직규제국에서 받은 공로패. 일리노이주 부동산 행정·징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주정부로부터 받은 감사장. 2006년 일리노이주 부동산 행정·징계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며 주지사로부터 받은 공식 임명장.

◇ 차세대에 남긴 정직과 화합

손 회장이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것은 평생 지켜온 ‘원칙’이었다. 그는 “정직하게 일하고, 개인의 욕심보다 공동체의 신뢰를 앞세우며,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힘써야 한다”며 “내가 조금 양보하고 나눔으로써 세상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커뮤니티의 내일도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의 삶은 시카고 한인 이민사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낯선 땅에서 CTA 관리직으로 주류사회 시스템을 익혔고, 부동산업을 통해 한인들의 정착을 도왔으며, 협회와 여러 단체 활동을 통해 후배들이 걸어갈 길을 넓혔다. 앞에서 이끌 때도 있었고, 뒤에서 버팀목이 될 때도 있었다.

손 회장은 “좌우를 가르기보다 우리 민족과 다음 세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며 “정직하게 살고, 욕심부리지 말고, 함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시카고에서 그가 지켜온 믿음은 결국 하나의 길로 모인다. 사람이 정직해야 공동체가 신뢰를 얻고,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야 다음 세대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월터 손 회장이 평생 써 내려온 시카고 한인 이민사의 한 페이지이자, 세대를 넘어 이어질 개척자의 유산으로 남았다.

<윤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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