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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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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열 박사] 여든하나의 청춘, 자유로운 영혼이 빚어낸 ‘세월의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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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열 박사

— 박성열 박사를 만나다

8월 22일, 대전 문지동의 한적한 카페. 여름의 끝자락을 아쉬워하듯 후두둑 소나기가 유리창을 흠뻑 적시고 지나갔다. 빗물에 씻긴 초록 잎새들이 한층 짙어진 생명력을 뿜어내는 창가 자리에서, 『세월의 통찰』의 저자 박성열 박사(81)를 마주했다. ‘여든하나’라는 숫자가 무색할 만큼, 그의 눈동자는 청년처럼 맑고 형형했다. 평생을 차가운 이성과 데이터의 세계에서 살아온 과학자의 얼굴에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따뜻하고 자유로운 봄날의 여유가 머물고 있었다. 향긋한 커피 향 속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지녀야 할 본질적 가치에 대한 그의 묵직한 이야기가 조용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세월을 거스르는 청춘의 자전거, 자연 속에서 찾은 생의 감각

박성열 박사의 최근 일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지난봄, 그는 4개월 동안 무려 서른 번이나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을 홀로 올랐다. 태백산의 눈꽃을 헤치며 시작해 속리산, 계룡산, 덕유산을 거쳐 금정산까지. 남들은 숨을 헐떡일 험준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그는 온전히 자신의 숨결과 마주했다. 그리고 산의 푸르름이 짙어지고 찌는 듯한 더위가 찾아온 여름부터는 매일 같이 자전거 안장에 오른다. 전날에도 한 시간 반 동안 갑천 변을 내달렸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벅찬 생기가 감돌았다. 갑천을 따라 백로와 왜가리가 노닐고 때로는 뱀이 스쳐 가는 물가를 달리며 그는 살아 숨 쉬는 대자연의 호흡을 온몸으로 빨아들인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가는 풍경일지 몰라도, 박 박사에게 대자연은 생명력의 원천이자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혼자 걷고, 혼자 달리는 시간. 그 고독한 몰입의 순간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동시에 낡은 허물을 벗어던지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

고독이라는 생리적 환상, 그 너머에서 마주한 진정한 ‘나’

홀로 험산의 능선을 타고 끝없는 물길을 달리는 그에게 누군가는 외롭지 않으냐고 묻는다. 그러나 박 박사는 흔들림 없는 미소로 답한다.

박성열 박사(좌)가 본지 특파원(우)에게 데이터의 세계에서 살아온 과학자로서 삶을 들려주고 있다

“외로움과 고독함은 그저 뇌가 만들어내는 생리적인 허상일 뿐입니다.

그의 통찰은 명쾌하고 철학적이다. 나이 듦과 함께 찾아오는 소외감이나 지루함조차 객관적인 시선으로 분리해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는 군중 속의 피상적인 어울림이나 남의 시선을 의식한 체면치레에 자신의 귀한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체면 때문에 억지로 모임에 나가고, 원치 않는 관계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하는 길을 택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수동적인 삶은 그의 사전에 없다.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출발하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 주체적인 걸음. 그것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생의 유한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특권이다. 장수(長壽)라는 축복이 단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내듯, 오늘도 그는 고독이라는 허상을 깨부수며 자유를 향해 페달을 밟는다.

한국 IT 신화의 초석을 다진 선구자, 이성과 감성의 경계를 허물다

이러한 끝없는 탐구열과 삶의 철학은 그의 자서전 성격을 띤 저서 『세월의 통찰』 속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성공담을 늘어놓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척박했던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토양 위에 IT 강국이라는 거대한 탑의 주춧돌을 놓았던 한 1세대 과학자의 치열한 연대기이자, 후학들을 향한 따뜻하지만 엄격한 지침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비롯한 국가 핵심 연구 기관에서 정보기술개발단장, 기획부장과 감사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그는 숱한 밤을 하얀 도면과 씨름하며 보냈다. 정책을 입안하고 방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타당성 있게 평가하는 일은 고도의 이성과 흔들림 없는 원칙을 요구하는 고단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통찰』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진정한 울림은 그가 성취한 이력의 화려함이 아니라, 권위의 정점에서 스스로 내려올 줄 아는 ‘비움의 미학’에 있다. 오랫동안 이끌어오던 부서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의 일화는 그의 품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후배들이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객관적인 시스템의 기틀을 완벽히 다져놓은 뒤 미련 없이 떠났다. 자신이 장수(長壽)하고 그 자리를 오래 지키는 것이 행여나 후배들의 길을 막는 부작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깊은 배려였다. “장수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것이 조직의 정체를 부른다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책장 사이사이에 배어 있는 그의 담담한 고백은, 자리에 연연하는 현대인들에게 서늘한 깨달음을 안겨준다.

25억 년의 침묵을 어루만지다, 지질학으로 뻗어나간 끝없는 지적 탐구

박성열 박사의 지적 갈증은 평생을 바친 IT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그의 시선은 수십억 년의 아득한 시간을 묵묵히 품어온 바위를 향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돼 있는 암석이 25억 년 된 암석인데, 서해 덕적군도의 이작도에 있어요. 거기에 가서 저는 감격적으로 그 바위를 끌어안았는데, 이른 아침 산을 두 개를 넘어가서 찾았어요. ‘이것이 우리나라 제일 오래돼 있는 바위구나’ 하고, 철썩철썩 파도치는 한적한 바다 앞에 꿇어앉았지요.”

백합꽃처럼 찰나를 사는 인간이 25억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과 마주하며 존재의 겸허함을 배우는 순간이다. 평생 보이지 않는 정보통신과 데이터를 연구해 온 과학자가 이제는 가장 단단한 자연의 기록표를 통해 우주의 섭리를 읽어낸다. 집요한 관찰력으로 끝없이 진리를 묻는 그는 영원히 식지 않는 청춘이다.

『세월의 통찰』저자: 박성열 박사(81)

『세월의 통찰』에 아로새긴 반세기의 궤적, 치열했던 과학자의 삶과 비움의 미학

이러한 끝없는 탐구열은 그의 저서 『세월의 통찰』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이 책은 IT 강국의 주춧돌을 놓은 1세대 과학자의 치열한 연대기이자 후학을 위한 지침서다. 기획부장 등 핵심 보직을 거치며 방대한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그는 치열했던 당시 단편을 이렇게 회상한다.

“다들 평가할 자료만 가져오지 객관적인 잣대가 없었어요. 그래서 주말 내내 고민해 다섯 가지 항목에 20점씩 균형 있는 평가 시스템을 직접 만들었죠.”

그의 진정한 품격은 성취의 화려함보다 정점에서 스스로 내려올 줄 아는 ‘비움의 미학’에 있다. 투명한 평가 기틀을 완벽히 다져놓은 뒤, 그는 후배들을 위해 미련 없이 자리를 내어주었다.

“외로움 같은 감정에 매몰되지 않아요. 그건 내가 장수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부산물이죠. 장수라는 축복을 얻었다면 그 정도 무게는 기꺼이 안고 가야 합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아름답게 물러난 그의 묵직한 고백은 현대인들에게 서늘하고도 깊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끝나지 않은 저술의 여정, 펜 끝에 담아낼 ‘인생의 통찰’

쉼 없이 달려온 여든하나의 삶이지만, 박성열 박사의 지적 항해는 닻을 내릴 줄을 모른다. 그의 시선은 이미 다음 목적지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질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시대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쥔 채 인생 3막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중이다. 그가 계획하고 있는 향후 저술 활동의 청사진은 크게 세 가지의 굵직한 궤적을 그린다.

“나의 스토리 자서전은 2024년도에 이미 완성했고, 이제는 세월의 통찰을 넘어 인생에 대한 가이드를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의 첫 번째 과업이었던 자서전이 한 개인의 치열했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면, 앞으로 쓰일 글들은 철저히 미래 세대와 후학들을 향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특히 그는 급변하는 시대적 파도 속에서 길을 잃기 쉬운 현대인들을 위해, 단순한 시간의 기록을 넘어선 보편적인 생의 지혜를 활자로 남기려 한다.

“생성형 GPT가 질문에 대한 답을 훌륭하게 제시해 주기 때문에, 제 전공과 결부된 인생의 통찰을 엮어내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지요.”

과거 산업공학과 IT 기획의 최전방에서 국가의 밑그림을 그렸던 이성적 사유가, 이제는 융합적 사고를 통해 ‘인생’이라는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텍스트를 해독하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기계의 언어를 빌려 인간의 영혼을 번역하다

최첨단 인공지능 기술을 일상적인 저술 도구로 활용하는 여든 노학자의 모습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기계와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킬 것이라는 세간의 두려움 앞에서도, 그는 1세대 과학자 특유의 유연함과 통찰로 기술을 완벽하게 길들여 자신의 것으로 체화했다. 산을 오르거나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문득 떠오르는 파편적인 사유들은 그의 스마트폰 녹음기 속에 고스란히 담긴다.

“요즘은 AI가 글 쓰는 작업을 너무나 세밀하게 도와주니, 산행하며 떠오른 단상들을 녹음만 해두어도 훌륭한 초고가 됩니다.”

대자연이 뿜어내는 원초적인 생명력과 뇌리를 스치는 직관적 영감들이 최신 AI 기술을 통해 정교한 텍스트로 변환되는 과정은, 흡사 기계의 언어를 빌려 인간의 영혼을 번역해 내는 예술 작업과도 같다. 하지만 그는 기술의 편리함에 매몰되지 않고, 언제나 그 중심에 인간의 고유한 철학이 굳건히 자리해야 함을 잊지 않는다.

“결국 AI는 도구일 뿐, 그 안에 어떤 진정성과 철학을 담아낼 것인가는 오롯이 살아 숨 쉬는 우리 인간의 몫입니다.”

도구는 진화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의 단단한 신념은, 맹목적인 기술 만능주의에 빠진 이 시대에 서늘한 경종을 울린다.

이성과 데이터의 숲을 지나, 마침내 도달할 시(詩)의 바다

평생을 객관적 지표와 수치, 그리고 냉철한 이성의 숲에서 살아온 과학자. 그러나 그의 긴 여정이 궁극적으로 가닿고자 하는 종착지는 놀랍게도 가장 감성적이고 은유적인 언어의 바다, 바로 ‘시(詩)’의 세계다. 앞선 저술 계획들이 궤도에 오르고 나면, 그는 자신의 삶을 맑게 여과하여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낼 꿈을 꾸고 있다.

“모든 정리와 저술이 끝나면, 제 삶의 마지막 여백은 시집 한 권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지질학을 탐구하며 25억 년 된 바위의 침묵을 어루만지고, 홀로 거친 산맥을 넘으며 고독의 생리적 허상을 깨부수었던 그의 모든 시간은, 사실 한 편의 거대한 시를 잉태하기 위한 기나긴 은유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의 진실을 탐구하는 과학과, 언어 너머의 심상을 포착하는 시는 결국 진리를 향한 두 개의 다른 길일 뿐이다.

“치열했던 이성의 시간을 지나왔으니, 이제는 가장 자유롭고 아름다운 언어로 남은 생의 경이로움을 노래할 차례입니다.”

여든하나의 소년이 빚어낼 그 맑고 투명한 시어들은, 세파에 흔들리는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따뜻한 위로의 비로 내릴 것이 틀림없다.

빗물 갠 하늘, 찬란하게 빛나는 자유로운 영혼의 궤적

두 시간 남짓 이어진 인터뷰가 끝날 무렵, 후두둑 내리치던 소나기가 어느새 멎고 서쪽 하늘로 투명한 햇살이 번지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카페 문을 나서는 박성열 박사의 뒷모습은 가볍고 경쾌했다. 평생 짊어졌던 이성과 책임의 무거운 배낭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이제는 대자연의 결을 어루만지며 끝없는 지적 유희를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 그의 삶은 나이 듦이 쇠락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과 대면하는 찬란한 축복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첨단 AI 기술의 돛을 달고 시(詩)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그의 맑은 항해가 언제까지나 청춘이기를. 아울러 그의 펜 끝에서 탄생할 생의 깊은 통찰들이, 짙은 안개 낀 바다를 건너는 우리 모두에게 다정한 등대 불빛으로 가 닿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본다.

이가희 시카고한국일보 한국특파원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시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