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계의 거목 이시형 박사
가을 햇살이 투명하게 부서지는 2026년 9월 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행복노화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올해 아흔셋이라는 나이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시형 박사가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20년 넘게 숱한 사람들의 삶을 짚어온 기자의 눈에도 그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얼굴에는 세월이 비껴간 듯 주름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고,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는 공간을 가득 메울 만큼 짱짱했다. 평생 인간의 뇌와 마음을 치유해 온 노학자의 자태는, 가을날의 단단한 열매처럼 깊게 숙성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스스로 짐이 되지 않으려는 꼿꼿한 자존심
매일 새벽 5시, 세상이 아직 어둠에 잠겨 있을 때 그는 어김없이 일어나 펜을 쥔다. 차가운 디지털 자판 대신 거친 종이 위로 잉크를 스며들게 하며 하루를 여는 손글씨는 그의 오랜 의식이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지하철 경로석을 곁눈질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현역이니까요. 사회에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작게나마 무언가를 생산하고 기여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의 덤덤한 고백에는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두 발로 서겠다는 단단한 자존심이 배어 있다. 현역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단순한 직업적 상태가 아니라, 생이 끝나는 날까지 세상과 교감하겠다는 치열한 의지의 동의어였다.
아내가 남긴 빈자리, 고독이라는 이름의 긴 터널
철인 같은 그에게도 시간은 어김없이 상실의 아픔을 안겼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후, 그는 홀로 남겨진 고독의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아내가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커피 물을 끓이고 라면 하나를 끓여 먹는 소소한 일상조차 막막해졌을 때, 비로소 아내의 거대한 그늘을 깨달았다는 고백이다.
“아내가 없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커피 끓이고 라면 끓이는 것밖에 없더군요. 살아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참 미안합니다.”
10년 넘게 홀아비로 살아야 하는 남성들의 통계적 숙명을 담담히 읊조리는 그의 눈빛에는 후회와 짙은 그리움이 교차했다. 그 서늘한 고독 속에서 그는 다시 펜을 들고 ‘고독’에 관한 책을 써 내려가며, 마음에 난 생채기를 묵묵히 치유하고 있었다.
그의 건강 비결은 놀랍도록 단출했다. 화려한 영양제나 값비싼 식단이 아닌 ‘소식다동(小食多動)’, 즉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일상의 실천이다. 평생 75~78kg의 체중을 유지하는 그는 12시간의 공복을 지키며 스스로의 몸을 가볍게 만들어냈다. 원한을 품지 않고 불필요한 감정을 비워내어 긍정의 힘으로 발효시키는 마음의 탄력성. 그것이야말로 정보와 욕망이 과잉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시급히 처방받아야 할 명약이었다.
끝나지 않는 청춘의 궤적, 인공지능(AI)과 문인화의 경계를 넘나들다
“배움이 끝나는 순간, 우리 인생도 끝이 납니다.”
이시형 박사의 이 말은 단순한 명언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서늘한 진실이다. 나이가 들면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는 세상의 편견을 비웃듯, 그는 여전히 지독한 ‘학습광’이다. 구순을 넘긴 나이에도 매주 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미래학당’에 참석해 새로운 세계를 탐구한다. 놀라운 것은 그가 벌써 2년 가까이 인공지능(AI)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 세대조차 벅차하는 최첨단 기술의 흐름을 좇으며, 끊임없이 뇌의 신경망을 새롭게 연결하는 그의 모습은 경외감을 자아낸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뷰 도중 그가 보여준 책자에는 ‘생각하는 힘을 되찾는 프로젝트, 세로토닌 문인화’라는 낯선 글귀가 적혀 있었다. 글씨 없이 새 두 마리만 덩그러니 그려진 그림 한 점. 그는 아이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며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이것을 그렸을까?”를 묻는다고 한다. 정답을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느끼게 하는 훈련이다. 모든 것을 AI가 대신 찾아주는 시대에, 텍스트에 갇혀버린 현대인들의 문해력과 창의력을 일깨우기 위해 그는 붓을 들고 마음의 여백을 그린다. 차가운 인공지능과 따뜻한 문인화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93세 노학자의 지적 호기심은 그 어떤 청년의 것보다 뜨겁고 푸르렀다.
꿀꿀이죽에 섞인 이쑤시개, 눈물로 끓여낸 긍정의 힘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정신의학계의 거목이지만, 그의 10대는 지독한 가난과 절망으로 얼룩져 있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중학교 4학년(지금의 고등학교 1학년)이던 소년 이시형은 가족의 생계를 짊어져야 했다. 미군 부대의 ‘하우스 보이’로 일하며 남은 밥과 찌꺼기를 모아 음식으로 만든 이른바 ‘꿀꿀이죽’을 사다 먹고, 때로는 헌혈차에서 피를 뽑아 번 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그 시절의 뼈아픈 에피소드 하나가 기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두드렸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잔반으로 끓여낸 이른바 ‘꿀꿀이죽’으로 주린 배를 채우던 시절, 그 죽을 사 먹은 한국 사람들은 음식에 섞여 들어간 이쑤시개나 담배꽁초 때문에 입천장을 심하게 다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처참한 빈곤과 수치심에 남몰래 눈물을 쏟아내던 소년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것은 미군 부대의 군목(목사)이었다. 군목은 굶주린 이들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고 소년 이시형과 함께 직접 그 꿀꿀이죽을 사 먹으며 참담한 현실을 목도했다. 그는 미군들을 향해 “우리가 남긴 음식을 한국인들이 생명줄처럼 먹고 있으니, 제발 잔반에 이쑤시개나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훈계하며 간곡히 호소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피어난 이 작은 배려와 연대는 버려지던 음식에 청결을 불어넣었고, 훗날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얼큰한 ‘부대찌개’의 기원이 되었다. 버려진 찌꺼기마저 끓이고 졸여내어 기어코 따뜻한 부대찌개로 승화시킨 끈질긴 생명력처럼, 절망을 삶의 땔감으로 삼아 긍정의 에너지로 끓여낸 그의 서사는 한 편의 눈물겨운 기적과도 같다.
고독의 시대, 세로토닌의 온기로 단절의 벽을 허물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현대 사회의 가장 치명적인 질병, ‘단절’과 ‘고독’으로 이어졌다. 원래 인간은 무리 지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대가족 제도를 붕괴시켰고, 사람들을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상자 속에 뿔뿔이 고립시켰다. 이 박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우울증과 자살의 근본 원인을 ‘관계의 상실’에서 찾는다.
“우리는 평생 낯선 사람과 다정하게 인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의 예리한 지적처럼, 현대인들은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선을 피하기 바쁘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서도,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표현의 문화’에는 서툴기 짝이 없다.
이 박사는 단절의 벽을 허무는 열쇠로 ‘세로토닌’을 꼽는다. 세로토닌은 화려한 성취나 강렬한 쾌락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웃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공원의 흙을 밟으며 산책하고, 누군가의 어깨를 따뜻하게 토닥일 때 뇌 속에서 조용히 번져가는 ‘관계의 온기’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아주 작은 용기.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고 연대하려는 마음. 파편화된 개인주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젊은 세대에게 그는 “사람의 온기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역설한다. 외로움이 두렵다면 먼저 문을 열고 나가 이웃의 안부를 물으라는 그의 처방전은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결국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백신은 화려한 스펙도, 두둑한 통장 잔고도 아닌, 내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누는 다정한 눈빛 한 번에 있었던 것이다.
쓸모를 증명하는 삶, 타인을 향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치유
우리 삶을 진정으로 지탱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백 세 시대를 눈앞에 둔 시니어들에게 은퇴는 축복이 아니라 자칫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시형 박사는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는 감각, 바로 그 ‘쓸모’의 확인이 인간을 숨 쉬게 한다”고 단언한다. 평생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그는 이제 저서 『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의 표지에 그려진 푸른 산하처럼, 메마른 현대인들의 마음 밭을 일구는 치유의 농부를 자처하고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각자의 생존만이 지상 과제가 되어버린 차가운 세상 속에서 ‘공동체를 위한 헌신’은 어쩌면 고루한 옛말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타인을 향해 기꺼이 손을 뻗는 행위가 결코 희생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면역력을 높이는 가장 지혜롭고도 숭고한 생존법이라 역설한다. 공동체를 향한 기여와 나눔의 기쁨이 뇌과학적으로도 세로토닌을 분비시켜 스스로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타인과 세상에 유익한 존재로 남으려는 의지, 그것이야말로 93년의 세월을 흔들림 없이 버텨낸 그의 가장 강력한 항체였다.
75세, 진짜 노화가 묻는 생의 방향타
많은 이들이 60대에 은퇴를 맞이하며 생의 무대에서 뒤로 물러선다고 생각하지만, 의학자로서 그가 바라보는 진정한 노화의 기점은 75세다. 이 시기가 되면 신체적 쇠락은 물론이거니와 상실과 고독이라는 심리적인 지진이 본격적으로 삶을 뒤흔든다. 미주 한인 사회에서 이민 세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6070 시니어들에게 그는 애정 어린 경고를 던진다.
“장수의 시대므로 75세가 되기 전에 온전히 나만을 위한 새로운 일상의 루틴과 느슨하지만 따뜻한 관계망을 미리 구축해야 합니다.”
평생 가족의 생계를 위해, 혹은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철저히 자신 내면의 배움과 기쁨을 향해 방향타를 돌려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은발의 노학자가 회색 재킷과 옅은 푸른색 셔츠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차분하게 노년 준비를 가장 완벽한 모범 답안으로 우리에게 제시했다.
운명을 비틀어버린 거인의 투박한 진심
인생의 굽이마다 예기치 못한 비바람이 몰아칠 때, 이 박사는 결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비를 맞지 않았다. 참혹했던 6.25 전쟁, 이쑤시개가 섞인 꿀꿀이죽을 먹어야 했던 찢어질 듯한 가난, 그리고 최근 삶의 반쪽이었던 아내와의 뼈아픈 사별까지. 그를 덮쳐온 운명의 파도는 언제나 거칠고 매서웠으나, 그는 묵묵히 그 파도를 올라타 궤도를 수정했다.
“나쁜 운명이 다가오면 수동적으로 굴복할 것이 아니라, 기꺼이 비틀어버리겠다는 강인한 내면의 힘.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이 단호한 한마디가 기자의 심장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인터뷰의 끝자락, 100세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신인류’로 살아갈 미래 세대가 인간 이시형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글쎄요. 그저 운명에 기대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참 열심히 살아온 사람. 그거 하나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국민 의사, 베스트셀러 작가, 뇌과학의 선구자라는 화려한 수식어 대신,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라는 투박하지만 눈물겹게 진실한 그 한 문장 속에 93년 생애의 찬란한 결이 모두 담겨 있었다.
가을바람 속에 흩어지는 세로토닌의 향기
인터뷰 내내 ‘생각하는 힘을 되찾는 프로젝트’이자 AI 시대 문해력을 회복하는 새로운 교육이라며 그가 소년처럼 펼쳐 보이던 『세로토닌 문인화』 책자의 깊은 묵향이 여전히 코끝을 맴도는 듯했다.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늙어간다. 그러나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단절의 벽을 허물고 이웃에게 먼저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용기, 시대가 변해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는 뜨거운 호기심,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삶의 주도권을 결코 놓지 않는 단단한 의지. 93세의 현역 이시형 박사가 온몸으로 증명해 낸 이 고귀한 삶의 태도가, 오늘 시카고 한국일보 지면을 마주한 수많은 미주 한인 동포들의 가슴에 따뜻한 세로토닌의 위로로 촉촉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노학자의 꼿꼿한 어깨와 눈동자를 보며 기자는 취재 수첩을 덮었다. 생의 한가운데서 그가 띄워 보낸 희망의 편지는 이제 멈추지 않는 청춘의 이름으로 우리 각자의 가슴 속에서 다시 눈부시게 싹을 틔울 것이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시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