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풀이] 左顧右眄(좌고우면)

1894

방두표(시카고 문인회 회원)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 한다.’의 뜻으로 이 말은, 옛날 중국의 위(魏) 나라의 조식(曺植)이 오질(吳質)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래된 고사성어(故事成語)로, 원래의 뜻은 ‘좌우를 살펴 빈틈이 없게 한다.’라는 의미로 조식의 편지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 ‘술잔에 가득한 술이 앞에서 넘실거리고 퉁소와 피리가 뒤에서 연주하면, 그대는 독수리처럼 비상하여 봉황(鳳凰)이 탄복(歎服)하고 호랑이(虎)가 응시(凝視)할 것이니 한고조(漢高祖)의 명신(名臣)인 소하(蕭何)와 조참(曺參)도 그대의 짝이 될 수 없고, 한무제(漢武帝)의 명장인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도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왼쪽을 돌아보고, 또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니 어찌 그대의 장한 뜻이 아니겠습니까?’ 원문은 左顧右眄, 謂若無人, 豈非吾子壯志哉.(좌고우면 하여도 위약무인 이니 기비오자장지재 니라)입니다. 즉 조식(曺植)은 오질(吳質)이 문무(文武)를 겸비(兼備)하고 기상이 출중(出衆)하니 고금을 통틀어 견줄만한 사람이 없다고 찬미하며, 좌우를 살펴보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형용하는 뜻으로 아부(阿附)하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이 말이 훗날 이중 4자만 따다가 ‘左顧右眄(좌고우면)’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2가지 의미로, 상대편에게는 ‘왼쪽을 보는척하면서, 오른쪽을 곁눈질하는 꼼수 쓰지 마라.’의 뜻으로 사용되며, 하나는 자신은 ‘왼쪽, 오른쪽 돌아보지 않고 오직 정면만 보고 정도(正道)로 가겠다.’ 의뜻으로 자주 사용 합니다. 그래서 이 말을 아예 ‘左右顧眄(좌우고면)’,또는 ‘左顧右視(좌고우시):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도 쳐다본다. ’左瞻右顧(좌첨우고): 왼쪽을 쳐다보고, 오른쪽도 돌아본다. 라고 사용하는 것이 맞는다고 하는 설(說)도 있습니다. 또 다른 설로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서로 패권(覇權)을 다투고 있을 때, 유방이 진나라의 관중(關中)을 먼저 탈환했을 때, 뒤에 항우가 힘으로 밀고 들어와 차지하므로 당시로는 할 수 없이 그곳을 피해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을 때 항우는 그의 공(功)을 인정 천하를 분할해 왕의 자리를 내어 줄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모신(謀臣)인 범증(范增)은 할 수 없다면, ‘파(巴)와 촉(蜀)은 길이 험하여 교통이 불편하고 게다가 촉나라 땅은 진(秦)나라의 잔류병 들이 많이 들끓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땅을 유방에게 주기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항우는 쾌히 ‘좋은 생각이오! 파(巴)나 촉(蜀)도 관중 땅임에는 틀림없으니 선왕인 회왕(懷王)의 약정(約定)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지.’ 했습니다. 그래서 유방에게 파, 촉의 관중 땅을 제공하여 한왕(漢王)에 임명하고 남정(南鄭)에 도읍을 정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방은 처음부터 야심이 있었기에 만일을 생각하여 두(杜)지방의 남쪽을 경유하여 진군했는데, 계곡지대를 통과한 다음에는 그곳의 다리를 모조리 불태워 없앴다. 이는 탈주하려는 병사들을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동쪽의 관중지방으로 진격할 의사가 추호도 없으며, 관중의 왕이 될 자격도 없다는 사실을 항우에게 보여주려는 계략(計略)’이었습니다. 그러나 관중지방을 임시 떠나면서 슬쩍 곁눈으로 보아둔 새로운 지름길을 찾아내고는 기존의 길을 모두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쪽을 보는 척 하면서 정말로 마음에 새겨둔 쪽을 곁눈으로 별 관심 없는 듯하지만, 실제는 마음 판에 새겨두는 것이 좌고우면(左顧右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