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시민들 휴대폰으로 군부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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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진행된 시위 현장 근처로 경찰 병력 일부가 이동하자 시민들이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 촬영을 하고 있다.[소셜미디어 캡처]

현장 촬영으로 군에 대응
대형 구호 만들기·펑크록
저항수단 갈수록 다양해져

“내 말은 못 믿어도 휴대폰에 담긴 사진과 기록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미얀마 양곤의 반군부 시위 현장에서 현지인 A씨가 군부에 맞서는 무기는 다름아닌 휴대폰이다. 생생한 모습을 실시간 소셜미디어에 올려 세계인이 미얀마 상황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 12일부터 집회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는 A씨는 23일 한국일보에 “현장의 수많은 시민들이 나처럼 경찰과 군병력의 수상한 움직임을 모두 촬영하고 있다”며 세계 여론에 시민들의 분노를 전하고 싶다고 절박하게 설명했다.

그는 전날 전국적으로 수백만명의 시민들이 동시에 거리에 뛰쳐나온 이른바 ‘22222혁명(혹은 총파업)’이 유혈사태 없이 끝난 것도 시민 대다수가 소지한 휴대폰의 위력 때문으로 믿고 있다. 모두가 기록자가 되는 한 과거 1988년 ‘88 항쟁’처럼 군부가 일방적으로 무력을 사용한 뒤 참혹한 현장을 숨기긴 힘들 것이란 주장이다. A씨의 말처럼 시민들의 휴대폰은 군부의 민낯을 확인시키는 데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전날 수도 네피도 프인 마나 거리에서 이유도 없이 체포된 150명의 시민들에 대한 증거도 인근 건물에서 이 모습을 찍은 시민의 영상이었다.

미얀마 총파업대책위원회는 이 자료를 근거로 군부 측에 시민들의 석방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만달레이 청년들의 실탄 피격 사망 사건도 시민들이 찍은 사진이 결정적 증거로 활용됐다. 발포 사실 자체를 계속 부인하던 군은 사진과 영상이 계속 공개되자 “시위대가 흉기 등을 사용해 방어 개념의 진압을 실시했다”고 한 발 물러선 바 있다.

시민들의 기지는 ‘미얀마를 구해달라(Save the Myanmar)’, ‘민주주의를 원한다(We want democracy)’ 등의 항공 사진용 대형 구호를 도심과 강가 등에 만드는 아이디어로 확장됐다. 자신들을 무인도에 갖힌 표류자의 신세로 풍자하기 위한 이 퍼포먼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세계에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이외에도 미얀마 음악인들은 ‘어느 날’이라는 신나는 펑크 음악에 지난 20여일의 민주화 투쟁 영상을 덧입혀 국제사회 관심을 유도했으며, 미술인들은 군인들이 검은색 페인트로 지운 ‘세 손가락 경계’ 조형물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저항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이날도 거리로 나와 군부 독재 타도와 민주화 쟁취 구호를 외쳤다. 오전 9시부터 모이기 시작한 군중의 수는 전날보다 줄었지만, 주요 공장과 상점은 이날도 파업을 이어가 하나된 의지를 내보였다. 코너에 몰린 군부는 전날 밤 시민 불복종 운동(CDM)을 주도한 공무원 등 수백명을 자택에서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은 군부의 야간 작전을 견제하기 위해 이날부터 마을마다 구성된 자경단의 방범 활동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미얀마 군부에 대한 국제사회 압박은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22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연루된 인사 2명에 대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미 재무부는 성명에서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 치안 당국의 평화적 시위대 사살에 대응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에도 미얀마 군부는 “이미 예상했다”며 꿈적도 하지 않고 있어 대치 국면은 계속될 전망이다.<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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