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의미(죄의 심판으로부터 자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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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구원받는 자는 죄와 죄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죽은 후 천당에 간다. 천당이란 무엇인가? 천당은 어디에 있는가? 사실 한글 성경에는 천당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죽은 자의 영혼이 머무는 곳을 나타내는 표현으로는 아브라함의 품, 낙원, 셋째 하늘, 또는 단순히 하늘이 있다. 아브라함의 품이란 표현은 눅 16:22에 나온다.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 떨어졌고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했다. 아브라함의 품이란 구원받은 자의 영혼이 평화로이 머무는 천당을 가리킨다.

천당을 가리키는 또 다른 용어는 “낙원”이다. 예수님과 같이 못 박힌 행악자 중 한 명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도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고후 12:4). 주님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고 하셨다. 낙원이라는 표현은 에덴동산에서 기원 되었음이 분명하다. 주안에서 구원받은 자의 영혼이 머무는 곳은 에덴동산처럼 좋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낙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아브라함의 품, 낙원에 이어 “셋째 하늘”도 이곳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였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후 12:2). 유대인들은 하늘을 보통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하늘은 새와 구름이 있는 대기권 안의 하늘이고, 둘째 하늘은 해와 달과 별이 있는 대기원 밖의 우주를 말하며, 셋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초월적 하늘이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구분법은 하늘의 종류에 대한 성경의 암시와도 일치한다. 예를 들어 모세는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라고 했다(신 10:14). 여기에서 모세는 하늘과 모든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을 구분했다. 비슷하게, 솔로몬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고 했다(왕상 8:27). 역시 하늘과 하늘들과 하늘들의 하늘이 구분됨을 알 수 있다. 다윗도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라고 했다(시편 68:33). 구약의 하늘들의 하늘은 가시적인 하늘과는 다른 초월적인 하늘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였다.

천당을 가리키는 말로 단순히 “하늘”을 쓰기도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셨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 16:19).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눅 24:51).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9-11).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벧전 3:22). 사도 바울도 예수께서 하늘 위에 오르셨다고 증거한다(엡 4:10).

그렇다면 천당은 어디에 있는가? 이 광활한 우주의 어느 곳에 있는가? 누군가 아주 빠른 우주선을 타고서 우주의 곳곳을 다 누비면 천당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천당은 4차원의 시공간에 존재한다기보다는 그 이상의 초월적 차원에 있다고 생각한다. 초월적 차원은 분명 존재하지만, 육체 안에 있는 인간은 인식 능력의 한계로 인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