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달러 찍어 재정적자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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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에 반하는 ‘현대통화이론’ 신봉

뉴욕의 금융가 월스트리트에서 정부 재정적자 규모에 얽매이지 않고 달러를 더 찍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이론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는 재정적자가 특정 수준 이상으로 불어나면 경제성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전통적 경제이론과 배치되는 주장이어서 주목된다.

8일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주요 금융회사 전략가들은 화폐를 양껏 찍어 배포하자는 현대통화이론(MMT)을 예측을 제시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데까지 사용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민주·버몬트) 연방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민주·뉴욕) 하원의원 등 좌파 정치인들이 MMT를 지지하는 만큼 월가의 반응은 다소 이색적이기도 하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얀 하치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MMT가 좌파 이론인지 우파 이론인지를 떠나 예측을 똑바로 할 가능성이 큰 도구를 모색하다가 MMT의 일부 아이디어가 유용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형 자산운용사 핌코의 전직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폴 매컬리도 “내 직업 인생 내내 MMT가 분석을 위한 아주 쓸모있는 틀이었다”고 말했다. 매컬리는 핌코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MMT와 다른 비주류 이론을 토대로 삼아 재정적자의 부작용 우려, 금리인상 가능성을 일축하고 수십억 달러를 벌었다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사 GMO의 전략가인 제임스 몬티어는 “MMT가 주류 경제학을 명백하게 완파했다”며 자신의 일상 업무인 투자를 하는 데 통찰력을 준다고까지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재정적자가 너무 작다거나 달러화를 더 찍어 부채를 갚는 게 지속가능하다는 MMT의 주장을 둘러싼 비웃음은 여전하다. NYT는 그간 주류 경제학에서는 MMT가 기괴한 아이디어의 모음 정도로 인식돼왔다고 설명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이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MMT를 ‘쓰레기’나 ‘헛소리’로 규정했다.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의 최고 학자들에게 MMT의 요지 몇 가지를 문의한 결과 28%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나머지 72%는 일절 동의하지 않는다고 혀를 찼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재정적자가 특정 수준을 넘으면 가용한 자본이 사라지고 금리가 치솟으면서 민간부문 투자 위축, 경제성장 저해, 물가상승 등의 부작용이 뒤따른다고 본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펼쳐진 풍경은 주류 경제학의 예상에 부합하지 않았다. 경기침체로 재정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었으나 금리는 떨어지고 투자자들은 자본이 풍족해졌으며 실업률과 물가가 기록적으로 낮아진 가운데 경제가 서서히 확장했다.

MMT 신봉자들 사이에서는 세상이 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년간 구축된 주류 경제학이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의 신속한 이동, 금본위제 폐지, 기술 발전, 인구구성 변화, 구조적 저금리 추세 등으로 글로벌 경제가 급변해 기존 모델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재정 운용에 대한 기본적 개념도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 재정운용은 세금을 거둬 필요한 공적 사업에 배분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공적 사업을 실시한 뒤 세금으로 그 비용을 메워가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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