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돌아 가는 길(The Way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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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연말 연시에 기록적인 추위로 미 전역이 몸살을 앓았다.  덕분에 집에 콕 박혀서 전에 봤던 영화들 몇편을 다시 봤다.  제법 시간이 흐른 뒤 에도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고 눈부시고 감동적인 영화가 있다.

1940년.  폴란드 장교 ‘야누스’는 스파이 혐의로 러시아의 비밀 경찰에게

취조를 당한다. 비밀 경찰은 야누스의 부인을 협박하여 거짓 증언을 하게 만들고 야누스를  시베리아 벌판 한 가운데 세워진 악명높은 강제 수용소 ‘캠프 105’로 보낸다.  수용소에는 공산주의나 스탈린을 반대한 죄로 잡혀 온 지식인들과 사상범, 또 실제 흉악한 범죄자들이 함께 섞여있다.  야누스는 죄수 친구들을 사귄다.

배우 출신 ‘카바로프’, 무뚝뚝한 미국인 ‘미스터 스미스’,  폴란드 화가 ‘토마스’, 라트비안 신부 ‘보스’,  야맹증이 있는 ‘카직’, 유고슬라비아인 ‘조란’ 이다.

수용소를 빠져 나와 남쪽으로 도망가서 바이칼호를 지나 몽고로 가겠다는 카바로프의 탈출 계획을 듣고 야누스는 희망을 가진다. 다섯 친구들은 동참하기로 한다. 여기에 도박 빚이 많은  러시아 범죄자 ‘발카’가 같이 가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정작 카바로프 자신은 겁이 나서 수용소에 남는다. 심한 눈폭풍이 몰아치는 날 일곱 명의 죄수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간수들과 감시견들이 뒤를 쫒지만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날씨가 그들의 자취를 덮어준다.

수용소를 빠져 나온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수용소보다 더 지독한 감옥인  시베리아의 혹독한 자연을 통과해야 한다. 추위와 싸우며 행군하던 이틀 째 밤에 야맹증이 있는 카직은 일행과 떨어져서 동사한다. 첫번 째 희생자를 묻고 여섯 명은 계속 걸어서 바이칼호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열 네살 된 폴란드 소녀 ‘이레나’를 만난다.  공산당을 피해 홀로 도망치던 이레나는 먹을 것과 보호가 필요하다. 이레나가 그들의 행군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일행은 소녀를 끼워준다. 일곱 명은 며칠을 걸어서 러시아와 몽고의 국경지대에 도착한다. 모두가 기쁘게 국경을 넘는데 발카는 러시아에 남겠다고 한다. 잡히면 다시 감옥에 가겠지만 그에게는 러시아가 조국이다.

계속 걷던 일행은 몽고 입구에서 스탈린의 초상과 붉은 별을 발견한다. 몽고도 공산 치하에 들어 간 것이다. 이제는 인도로 갈 수 밖에 없다. 다시 남쪽으로 행군하면서 고비 사막을 지난다.  끝이 없이 펼쳐지는 모래 사막에서 입은 옷만으로 걸어서 행진한다. 물이 없어서 목이 타고 모래 폭풍을 견디고  내리쬐는 햇볕에 살갗이 붉게 타들어 가고 발이 붓고 물집이 생긴다. 짐이 되지 않으려고 무리해서 걷던 이레나는 사막 한 가운데서 죽는다. 이레나를 묻고 일행은 묵묵히 걷는다. 화가 토마스는  힘든 여정에도 틈틈이 나무 껍질이나 종이 쪼가리에 동료들의 모습을 그려왔다.  쇠약해진 그도 작품들을 남기고 사막에서 눈을 감는다.

리더격인 야누스는 살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한 스미스를 독려하면서 자기가 왜 기를 쓰고 돌아가려는 지 이유를 얘기한다. 자신을 배신하고 평생을 고통속에서 살아 갈 아내를 용서해 주기 위해서이다.  스미스의 아들은 러시아에서  공산당의 손에 총살당했다.  아들을 러시아로 데려온 스미스는 그 죄책감으로 괴롭게 살았다. 야누스는 스미스에게 이제 스스로를 용서하라고 말한다.  남은 네 사람은 마침내 사막을 벗어나서 티벳에 도착한다. 스미스는 미군에 합류하고 세 명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간다. 자유인이 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팀이 합류한 촬영은 대자연의 절경과 그 웅장함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어떤 장비도 없이 맨 몸으로 4000마일을 걸어가는 장정을 그렸다. 영화 내내 자연은 아름답고 거대하고  신비하고 가혹하다. 거기에 비하면 인간은 한없이 작고 연약한 존재이다. 자연에 맞서서 그저 걷고 또 걷는다. 저마다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처절한 이유들이 있다. 자유에 대한 인간 의지는 결국 자연의 무자비함을 견뎌내게 한다. 혼자라면 힘들어도 함께이면 기적을 만드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처음 야누스가 탈출을 계획할 때 스미스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야누스가 대답한다. “그래도 자유인으로 죽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