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도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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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담임)

 

세계 최강대국 아니었나? 가장 강하고 부유한 나라 미국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하다. 물론,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 200개 넘는 국가에서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거의 다 역부족이다. 성공 케이스로 등장한 한국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참으로 온 세계가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 앞에서 쩔쩔매고 있다.

귀신들린 한 아이를 둘러싸고 쩔쩔매던 제자들이 연상된다. 이상하다. 불과 얼마 전, 제자들은 전도여행 중에 많은 귀신을 내쫓은 경험이 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안 될까? 예수께서 답하신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종류가 다른 귀신이라는 말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귀신을 만난 것이다.

그렇다. 인류가 새로운 종류의 귀신을 만났다. 말 그대로 ‘신종’이다. 코로나19가 귀신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 세계인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중이다. 식당과 상점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속출한다. 온 가족이 집 안에 격리되는 초유의 사태를 세계가 함께 경험한다. 앞으로의 경제가 얼마만큼 나빠질지 가늠이 안 될 지경이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누구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그야말로 새로운 종류의 귀신을 온 인류가 만나고 있다.

교회는 어떤가? 예수님의 제자들과 다르지 않다. 해결할 능력이 없다. 어쩔 줄 몰라 한다. 어쩌면 교회가 가장 당황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교회는 모이는 공동체다. 모여서 예배하고 떡을 떼야 교회다. 그런데 모일 수 없게 되었다. 아니, 모이면 안 되게 되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는데, 이제는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사는 상황이 되었다. 이 사태로 인해 ‘모이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질 자체가 위협과 도전에 놓였다.

이제 어쩔 것인가? 정부도, 의학계도, 종교계도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신다. 오직 기도만이 이 새로운 종류의 귀신을 내쫓을 유일한 길이라는 말씀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한심하고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기도한다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될까? 기도한다고 감염 환자의 병이 나을까? 기도한다고 실업자들이 직업을 되찾고, 가게 문을 다시 열게 될까?

그 전에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기도는 무엇인가? 기도는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다. 기도는 우리는 인간이며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우리의 무능과 하나님의 전능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르웨이 신학자 할레비스는 “오직 무기력한 인간만이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사태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민망하도록 철저히 드러낸다. 그걸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기도는 시작된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되 그것의 한계를 알기에 우리는 기도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바이러스가 인간의 환경파괴로 인해서 생긴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지구온난화가 바이러스의 생성과 활동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었고, 동물들의 서식지를 인간이 침범하여 동물들의 몸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 붙은 것이다. 코로나19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려야 할 첫 기도는 참회의 기도일 수밖에 없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