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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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관 노인건강센터 사무장(시카고)

 

아버지는 1903년 생으로 지금 살아계시면 만 113세이시다.  “난 복음을 위해 가난을 택했다” 말씀하시며 굶기를 밥먹듯 살다 가신 옛날 목사님이시다. 저녁을 굶고 자더라도 가정예배는 빼 놓은 적이 없다. 물만 마시고 자야할 판에 “다 엎드려 기도하자!”고 하실때면 나는 방바닥에 머리를 꼿고 반 졸면서 하나님과 아버지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점잖은 욕은 몰랐고, 그때 우리 똘이들이 할 수 있는 욕은 다 했다. 병으로 죽든지 굶어죽든지 어차피 죽어가는 것이니 욕의 질과 양에 신경을 쓸 상식도 없었지만 필요도 없었다.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는데 눈물어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주님’ 하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감사하단 말인가?  내가 아는 다른 장로, 목사는 잘 먹고 잘살던데 “왜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차별을 하시는 걸까?” 아침 일어나면 기운이 없어 학교도 가고싶지 않았다.

60을 지나 80을 넘고보니 예수님과 더부러 고락을 같이한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고 느낀다. 1965년 미국와서 50년이 넘도록 수없이 많은 사람을 대했지만 내 아버지만큼 정직하고 참을성 많고 남을 지극히 배려하고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속 옷까지 벗어주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동행해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생각할수록 아버지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다.  그렇게 초라하고 약해 보였던 아버지가  ‘다이야몬드’ 처럼 빛난다. 돌이켜보면 그때 아버지를 향해 욕을 퍼부었던 내가 벌받아 마땅한 놈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 주일날 이었다. 이영수(장로와 집사 중간으로 교회살림을 맡은 분)라는 노인이 설교하시고 계신 아버지의 멱살을 잡아 끌어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성경책을 품에 지닌체 끌려가시는 아버지를 보고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시고 계신가?” 내 작은 가슴은 찢어졌다. 나는 개 끌리듯 끌려가시는 아버지를 따라가면서 그 노인에게 욕을 퍼부었다. 이 사건의 동기는 놀음을 일삼는 집사를 목사가 공개근신조치 했다는 이유였다. 교인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꾸고 갚지않는 이 집사 때문에 교회가 시험을 당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개인적으로 그를 위해 상담과 금식기도를 했으나 별 효과가 없어 그 집사를 공개적으로 근신조치했다. 태풍이 몰아왔다. 이 집사는 당회원과 제직들을 찾아다니며 하태수 목사 배척운동을 맹열히 펼쳤다.

“그 놈을 가만 두세요?  아버지!” 나는 항의했다. ………침묵의 순간이 지나고….. 아버지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시면서도 저들을 용서하셨는데…………….”  “아버지가 예수님이세요?”  나는 격앙했다.  아버지의 얼굴은 무거운 표정뿐…….. 말이 없으셨다.

해 질 무렵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모습이 초라해보였다. 양복과 심방용 가죽가방이 젖어있었다. 목언저리와 어깨에 붙어있는 콩나물 대가리, 밥풀찌꺼기를 보고 먼저 어머니가 물었다. “웬 밥풀이요?”  어머니는 웃옷을 벗기시며 물었다. 어찌된 일인지 사연을 알고싶었다. 아버지는 워낙 과묵한 분이시라 한두번 물음엔 대꾸가 없다. 조금 후 입을 여셨다. “내가 이영수댁에 심방을 갔지, 죄는 지적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대로…….”  “그런대요?”  어머니의 질문이다.  “누구요?  안에서 누가 묻기에  하목삽니다. 대답했더니 열어놨던 싸리문을 닫으면서……. 벼락같이 설거지물을 담장넘어로 쏟아 버리드라고요”  “그래서요…..?”  “황당스러웠지…….” 아버지는 그 수모를 당하고 선채로 기도를 했다. 무슨 내용의 기도인지 지금도 나는 알 수없지만 ….. ‘용서의 기도’가 아니였겠나 싶다.

아버지는 은퇴를 하시고 큰 아들이 사는 대구로 가셨다. 달성공원 가까이 있는 곳이라 여름이면 노인분들을 정각으로 모아 ‘천당나그네 동지회’를 조직하고 쪽복음을 나누어주시며 성경에 나오는 얘기를 동화대회에 나온 연사처럼 재미있게 이어나가셨다. 황혼에 가까운 노인들의 진실한 벗으로 사시다 가신 아버지다. 추우나 더우나, 즐거우나 슬프나 지금도 나의 중심을 잡아주시는 아버지이시다. 지금 살아 계시면 시카고 한인상록회에 모이는 많은 노인분들의 벗이 되어줄 목사님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