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언브레이커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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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2000년 개봉한 영화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에서는 이 세상에는 선과 악 대신에 언브레이커블과 브레이커블, 곧 깨지지 않고 분열되지 않으며 흠이 나지 않는 존재와 쉽게 깨지고 나눠지고 상처받는 존재로 나눠진다고 이야기한다. 영화에서는 여러 대형사고에도 유일하게 생존자로 남게 된 자가 계속해서 살아남게 된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불사조와 같은 생존자에게 “당신은 살아가면서 도대체 며칠만이라도 아파 본 적이 있느냐?”는 쪽지를 받는다. 바로 그 쪽지를 보낸 사람은 유리몸을 가진 인간, 곧 쉽게 깨지고 망가지며 상처받고 약해지는 존재였던 것이다. 바로 이 절대 유리몸을 가진 주인공은 이 세상이 선과 악, 흑과 백, 음과 양으로 나눠져 있다면, 자신처럼 이렇게 절대적으로 약한 존재 반대편에는 절대적으로 강한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수소문하고 자료를 찾아 연구한 끝에 바로 그 ‘언브레이커블’한 또 다른 주인공을 찾아내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의 스토리이다. 물론 영화의 드라마적 요소 때문에 내용은 조금 자극적으로 흘러가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기본적인 주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특별히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중요한 도전을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시험과 유혹에 쓰러진다. 어느 한 성도가 자신은 거의 30년 동안 반복적인 회개와 죄고백에 신앙의 회의가 오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회개는 참으로 열심히 하지만, 그 회개한 죄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실천적 결단은 너무 부족한 것이 현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의지 부족만은 아니다. 도리어 문제는 믿음의 문제이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증거한다. 곧 하나님은 인간이 감당할만한 시험만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길 수 없는 시험이나 극복할 수 없는 유혹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시험이나 유혹에도 이겨낼 힘과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회개할 때마다 고백한다. “우리의 의지와 믿음에 비해, 우리 앞에 주어진 고난과 아픔, 시험과 유혹이 너무 커서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바울의 말한대로 변명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주어진 어떤 시험이든 고난이든 이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겨낼 만한 것만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능력과 의지의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40년 광야의 생활을 했다. 온갖 시험과 유혹이 몰려왔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시험에 빠지고 유혹에 넘어갔다. 수많은 죄와 악에 동조했고, 그것으로 완전히 하나님을 등지기도 했다. 그러나 원래 인간은 연약하고 죄가 많은 존재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만하는 것이 신앙일까? 하지만 광야의 40년 동안 영적인 언브레이커블은 존재했다.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 우리가 약해고 죄가 많아 시험과 유혹을 이겨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믿음의 부족한 자임을 증명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그들도 작은 일상 속에서는 죄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고 악한 일에 동조하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들은 돌아섰고, 마지막까지 큰 산과 같은 시험과 유혹에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았다. 그들이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완전히 파멸시키고자 시험과 유혹, 고난와 아픔을 주지 않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적인 언브레이커블이 될 수 있는 것은 완전하신 그 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에 대한 상실의 시대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많은 것 같고, 하나님을 믿어도 이겨내지 못하고 견디지 못한 시험이 많은 것 같지만, 그 거짓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만이 참된 진리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믿음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