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안나 제이콥슨(Anna Peterea Jacob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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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목사(시카고 나눔교회 담임)

조선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리울 정도로 조선땅에 간호 체계를 이루는데 큰 공헌을 했던 안나 제이콥스 (Anna Peterea Jacobson)는 한국의 최초 장로교 간호사이다. 그녀는 1866년 4월18일에 노르웨이에서 태어났고 루터 교도였던 경건한 부모 신앙속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다. 12살에 회심을 경험하고 일찌기 해외 선교에 큰 비젼을 갖게되며 하나님앞에 선교사로 결단하게 된다.

제이콥슨은 집안에서 정해준 정혼자와 약혼을 파기하고 장로교회로 이적했다는 이유로 15살 어린나이에 집에서 쫓겨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생계를 위해 남의집에서 온갖 궂진일을 하면서 선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미국 메인 주 (Maine)에 있는 포틀랜드(Portland)로 떠났다.

낮설은 이방 땅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며 포틀랜드에 있는 제일 장로교를 섬겼고 마음에 품었던 간호사 양성 학교에서 공부할수있게 되었다.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며 2년동안 하루의 3시간 수업과 12시간 병동 근무를 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훈련을 마쳤다. 그녀의 성실함은 훈련받은 메인 종합병원에서도 인정받아 일해 줄것을 권유 받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불쌍한 사람들 위해 헌신코자 하는 선교의 마음을 꺾지 못했다. 드디어 섬기는 교회 담임목사로 부터 추천을 받아 북장로회에 소속된 선교사로 1895년 4월6일에 조선땅에 파송을 받게 되었다.

당시 조선땅은 의료시설이 열악 하였고 간호사역이 절실했다. 1900년대 초 한국의 의료 체계는 그야말로 무(無)에서 출발했다. 제중원의 출발은 궁궐과 고위층을 위한 진료소였지만 선교사들이 운영권을 이양받은 이후부터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제이콥슨은 제중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던 에비슨 (Avison) 선교사의 요청으로 제중원의 1대 간호원장으로 부임하여 병든 사람들을 밤낮으로 돌보며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는데 힘썼으며 조선인들에게 간호사업과 간호교육을 알리는데 공헌했다.

내한한지 얼마 안되어 무더위와 긴 장마 속에 극성을 부리는 콜레라가 퍼져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고통을 당했다. 그녀는 열성적으로 전염병을 퇴치하고,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주력 하며 후에는 세브란스 병원의 학당에서 간호학 교수로서 ‘붕대법 및 마시지 응급조치법를 가르쳤다. 제이콥슨 선교사는 어린이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선교 보고서에 “나는 이제 조선의 아이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무서워하지 않고 친근하게만 생각해 준다면, 만족 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이콥슨은 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못하고 병든 조선인을 섬기다가 사역한지 1년 4개월 만에 이질에 걸리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건강이 회복된 것으로 생각하고 병원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1897년 1월 20일, 29살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짧은 선교 사역이었지만 그녀가 남긴 흔적은 애도하는 글을 통하여 조선인을 진심으로 사랑한 마음을 느낄수 있다. 독립신문은 제이콥슨 선교사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이 여인은 죽는 사람의 마음들을 위로하고 산 사람의 행실을 옳게 가르치며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조선에 빛나도록 일을 하였다. 조선에 있는 것에 비하면 낙원에 있는 것이지만 조선 인민에게는 크게 손해”라고 보도했다. 짧은 생애동안 조선을 섬겼던 제이콥슨의 섬김은 가장 아름다웠고 이시대 코로나 19를 겪는 우리에게 이웃 사랑의 실천의 본을 깨닫게 하였다.(참고: 한국간호 역사자료집, 내한선교사 총람, 양화진의 선교사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