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비평가와 인격수양(人格修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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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솔직히 말해서 작가 입장에서 본다면 소위 평론가(評論家)라는 친구들만큼 못마땅한 존재는 다시없을 것이다. 이렇다 할 작품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작품을 가지고서 따따부따한다는 것은 확실히 시인이나 작가들에게는 비윗살 거스를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것이 혹평(酷評)일 경우에는 작가들로부터 단박 “아니 재깐 놈이 뭐 길래 감히 내 작품을 가지고서—”운운의 반발감(反撥感)마저 살 우려가 있다. 실제로 작가와 비평가들 간에 이런 류(類)의 반목내지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언쟁을 우리는 종종 보아온 것이 또한 사실이다. 비평가들에 대한 심한 혐오감을 감추지 못했던 괴테(Goethe)는 결국 “저 개를 내쫓아라!”는 폭탄적인 선언을 버럭 내지르고야 말았다. 또한 비평가를 고작 “말꼬리에 붙어 다니는 쇠파리”로 폄하(貶下)한 사람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ov)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는 표현은 완곡하면서도 사뭇 시니컬한 바가 있다.

“만약에 당신이 자동차에 관해서 무엇을 알기를 원한다면, 자동차를 직접 조립해서 운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아 가겠느냐, 아니면 단지 자동차에 관해서 얘기를 들었을 뿐인 사람을 찾아 가 갰느냐?!” 여기서 그가 비평가들을 어느 쪽에 빗대어 말했는지를 우리는 쉽사리 알아차릴 수가 있다. 남에게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신약 복음서는 분명히 말해주고 있지마는, 하여튼 비평이랍시고 시답잖은 글줄이나마 쓰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귓구멍이 자주 가려워지기 마련이다.

작가들의 야유에 찬 공격에 대하여 비평가라고 어찌 답변이 없을 손가. 우선 일단 발표된 작품은 작가 그 자신의 전유물이 아니라 독자 모두의 공유물이라는 점을 유념해 주기 바란다. 다시 말해서 한 작품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전혀 독자(讀者)의 자의(自意)에 속하는 일이며, 비평가의 임무는 작품 속에서 감득(感得)한 정서를 그 나름대로의 비평적 시각(視覺)을 가지고서 분석. 종합하여 독자의 내심(內心)속에 재구성해 주는 작업이다. 그러니까 한 작품을 통해 비평가에 전달되는 느낌과 결론이 작가와 부합(符合)될 수도 있는 것이고 어긋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냉철한 객관적 비평의식을 지녀야한다는 것은 비평가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아닌가.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작품일 뿐이지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컨대 작가가 비평가의 발언에 너무 집착 한다는 것은 ‘콤플렉스’를 조성할 위험이 있으며 비평가는 또한 그의 비평 작업에 있어 인정(人情)에 치우쳐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가는 초연한 입장에서 문학과 인생을 논할 수 있는 ‘불혹지년’(不惑之年)에의 경지를 터득할 수 있는 인격수양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 작가들에게도 권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은 무론 삶의 모럴까지도 제시해주어야 할 귀중한 책임이 작가들에게는 주어져있는 만큼 하잘것없는 속사(俗事)에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서서 인생을 음미(吟味)하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있는 자세(姿勢)와 폭넓은 마음가짐을 생활인으로서 지녀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창작 활동 이전에 지녀야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