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뷰 거주 은퇴 예비역 장성 제임스 무코야마 주니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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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장성인 제임스 무코야마 주니어(왼쪽)씨가 절친인 박상진 목사와 함께 본보를 찾았다.

<특별한 한국 사랑 이야기>

부인은 우경자씨.  한국에서 1979년 입양된 42살 딸과 1980년에 한국에서  입양된 41살 아들이 있으며 글렌뷰에 거주하고 있는 제임스 무코야마 주니어 은퇴 장성.

미 육군 제2사단 3여단본부 소속으로 경기도 파주군에서 1966년부터 13개월간 파견나와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시카고에서 누구보다도 코리아를 사랑하는 일본계 미국 시민이다.

임진강 근처 DMZ에 근무하며 북한과 긴박한 대치 상황을 벌였다는 그는 1년여를 그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40여 명의 소대원이 부상당하고 12명의 미군이 희생당했다고 회상했다.

당시의 치열한 남북간의 군사적 대치 상황 속에서 북한의 간첩들이 DMZ를 넘어와 폭탄을 터뜨려 막사가 붕괴하면서 미군  3명이 사망, 25명이 부상당했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제임스 무코야마 쥬니어는 시카고에 정착한 일본 이민자의 후손으로 대학에서는 일본과 중국 역사를 공부했다.

성장하며 아시안 아메리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1966년 경기도 파주군 지역에 근무하면서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 활동을 펼쳤다.

당시 한국은 가난에 허덕이던 시절이어서 길은 자갈길에 하수 시설도 없고 전력 공급도 부족했다. 그런 시절에 군대에서 지역사회 원조 기금(Community Assistance Fund)을 조성, 동네 초등학교와 교회 등에 책상과 걸상 40개, 칠판 3개 등을 지원했으며 무너져가는 현관 문을 새로 교체해 주며 대민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는 “군인 중에 목수 일을 잘하는 사람이나 집을 건축하는데 경험이 있는 부대원들을 골라 근처 파출소와 연계해 건축을 돕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2.5톤 트럭에 실려있던  야간 감시용 망원경이 든 대형 물품 박스를 도난당했으나 한국 경찰의 도움으로 2시간만에 되찾기도 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그만큼 미군과 한국 경찰과의 돈독한 관계로 그가 한국을 떠날 때쯤에는 동네 병원, 학교, 경찰서장 등으로부터 수많은 감사장을 받았다. 그는 이 감사장을 아직도 보관 중이다.

당시 부대원 중 15%는 한국 출신 카츄사였는데  부대 내 ‘코리안  클럽’을 만들어 식사 때 김치, 잡채, 만두 등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국 전쟁 이후 그의 부대가  수행한 대민 봉사 활동을 회상할 때 지금도 뿌듯함을 느끼는다는 무코야마 씨.

“지금은 부강한 나라가 된 한국 정부에서 미국에 있는 한국전 재향군인들에게 항공표도 보조해 주고 숙박을 제공하며 잘사는 모습을 구경시켜 주는 것을 보고 무척 감동 받았다”고 밝혔다.

무코야마씨는 한국 근무를 마치고 시카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 1969년부터 이듬해까지 베트남에 근무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그는 코리안 아메리칸 우경자씨를 소개받고 편지와 장거리 전화로 연애를 한 후  마침내 결혼에 성공했다.

그의 모친이 1998년 하늘나라로 가실 때까지 시부모와 22년을 같이 살아 준 부인에게도 감사하고 있다.

결혼 후 8년간의 부부 생활 중 아이를 갖지못한 그는 입양을 고려했다. 부인과 의논 후 한국에서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1979년 한국에서  3개월 된 딸을 입양하고 다음 해에는 아들을 입양했다.

8년 전 심장마비가 오고  신장 투석까지 받던 그는 신장 이식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입양한 딸과 매치된 것이다. 그는 “주님이 주관하신 일(God thing)”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아버지의 날에 결혼 50주년 금혼식을 올리고 아들, 딸로부터 축하를 받았다며  그는 매우 Lucky한 인생이라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직업 장교(보병)로서 군대에서 근무를 시작한 그는 전설적인 기록도 가진 은퇴 장성이다.

별 1개를 달은 때 그는 42세로 미국에서 가장 젊은 나이였다. 3년 후 별 2개인 소장 계급을 달을 당시에도 그는 가장 젊은 소장이었다고 회상한다.

1995년 제대 후 예비역으로 27년을 보내고 은퇴했다.

그는 9살 때 무디 바이블 섬머 캠프를 다니며 신실한 기독교 집안의 종교 정신을 이어갈 준비를 했다.

그는 “성경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연애 편지”라고 강조했다.

9년 전부터는 Military Outreach USA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군 생활로 인한 여러 스트레스 해결 방안을 마련해주고 ‘사랑’과 ‘힐링’을 통한 군인 가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는 소명의식을 갖고 군인 가족들을 교육하고 도움을 주는데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전쟁 이후의 가난했던 한국에서 근무하며 한국민들에게 애정을 쏟았고 아이 둘을 입양해 키웠다. 입양한 딸로부터 신장 이식을 받았고 사랑하는 부인은 제 부모를 20년 넘게 모시며 살았다. 재패니즈 아메리칸(Japanese American)의 후손으로서 Korean을 영원히  사랑하고 싶다”고 말했다.<이점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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