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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ly 2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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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한인 개척자들’ 인터뷰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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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한국일보 창간 55주년 기획 ‘시카고 한인 개척자들’에 참여한 스물여섯 명의 원로. 이들의 삶과 기억에는 시카고 한인사회가 뿌리내리고 성장해 온 한 시대의 역사가 담겨 있다.

스물여섯 번의 만남, 한 시대를 기록하다

지난 3월 6일 첫 인터뷰를 시작해 7월 17일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기까지, 넉 달여 동안 스물여섯 명의 원로를 만났다. ‘시카고 한인 개척자들’은 시카고 한국일보 창간 55주년을 맞아 한인사회의 토대를 닦아온 이민 1세대의 삶과 발자취를 기록하기 위해 마련된 기획이었다.

“어떻게 시카고에 오시게 되셨습니까?”

스물여섯 명의 원로에게 가장 먼저 건넨 질문이었다. 같은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그들이 걸어온 길은 저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전쟁과 가난을 피해 고향을 떠났고, 누군가는 배움과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넜다. 가족의 미래를 위해 익숙했던 삶을 내려놓고 타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마주한 초창기 시카고는 도움을 청할 곳조차 마땅치 않은 척박한 땅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생계를 잇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울타리를 세웠다. 교회를 세우고, 한인회와 장학회를 조직했으며, 한국학교와 문화단체를 열어 자녀들에게 우리말과 뿌리를 가르쳤다. 언론을 세워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평온한 일상은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누군가 땀 흘려 길을 낸 결실이다.

원로들의 삶에는 곧 한 시대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피란과 가난, 유학과 이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시카고 한인사회가 형성되고 성장해 온 과정이 그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수십 년 전 일을 이야기하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분도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오히려 담담한 웃음으로 들려준 분도 있었고, 가족에게조차 자세히 말하지 않았던 기억을 처음 꺼내놓은 분도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은 무엇으로 한 생을 견디는지, 한 세대는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여러 번 생각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개척자’라 부르지 않았다. 특별한 공적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담담한 말 속에는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믿음과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려는 책임감, 다음 세대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한 사람이 견뎌낸 하루하루가 모여 시카고 한인사회의 역사가 됐고, 그들이 닦은 작은 길들이 이어져 오늘의 공동체를 떠받치는 든든한 주춧돌이 됐다.

20대에 신문사에 첫발을 내디딘 뒤 20여 년 동안 수많은 현장을 누비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중에서도 이번 프로젝트는 기자 인생을 통틀어 가장 보람되고 가슴 벅찬 여정이었다. 취재를 위해 만났지만, 오히려 한 분 한 분의 삶에서 깊은 지혜를 배우고 돌아온 날이 더 많았다.

그만큼 기사를 쓰는 일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단 몇 장의 지면에 압축해 담아야 했기에 문장 하나하나에 묵직한 책임감이 따랐다. 희미해진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연도를 정리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터뷰를 거듭할수록 이 기록을 반드시 남겨야 한다는 마음은 더욱 분명해졌다.

기억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한 세대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줄 수 있을 때 그 이야기를 남겨야, 다음 세대도 오늘의 한인사회가 어떤 길을 거쳐 세워졌는지 알 수 있다.

스물여섯 분과의 인터뷰는 여기서 일단락되지만,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다. 이 기록은 자녀와 손주들, 후배들에게 이어지고, 시카고 한인사회의 역사 속에 남아 또 다른 세대의 길을 비출 것이다.

이제 그들이 닦아놓은 길 위에 선 우리에게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공동체를 남길 것인가.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은 훗날 어떤 역사로 기억될 것인가.

긴 시간 기억을 되짚으며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자료를 찾고 기록을 남기는 데 함께해 주신 스물여섯 분의 개척자와 가족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시카고 한국일보 창간 55주년을 맞아 이 뜻깊은 기획을 마련하고, 스물여섯 분의 원로를 직접 만나 그 삶을 기록하는 일을 맡겨주신 김왕기 회장님께도 감사드린다. 아울러 시카고 한인사회의 초기 개척자로서 많은 원로와의 인연을 이어주시고 인터뷰의 첫 문을 열어주신 박해달 회장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윤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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