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비교의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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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임(위스콘신대 교수/유아교육학 박사)

잘난 사람이 너무나 많다! 다들 실력이 뛰어나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 뛰어난 미모를 지닌 사람들, 말주변이 좋은 사람들, 유머 감각이 놀랍도록 재치 있는 사람들, 글재주가 훌륭한 사람들, 손재주에 능한 사람들, 신들린 듯한 연주가들, 천상의 목소리를 내는 가수들, 붓을 자유자재로 휘날리는 화가들, 맛있고 달콤한 디저트를 열정을 쏟아 창조해 내는 요리사들, 고소 공포증이 없는 번지 점프 애호가들, 아슬아슬한 경기를 펼치는 스포츠 선수들, 투자에 밝은 사람들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러면 이들이 어떻게 크고 작은 일들에 성공했을까?

얼마전 채널A의 <서민갑부>라는 프로그램에서 상당히 성공한 세탁소 부부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 세탁소 아줌마는 과거에 설움을 겪은 후 “자신이 남에게 가기 전에 남이 자신에게 오게끔 만들자”고 결심했다. 즉, 남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이후 화학제품보다 자연 원료들을 사용한 세탁 기술부터, 옷에 묻은 여러 종류의 자국들을 지워 내기 위해서 나름대로 갖가지 비법들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드디어 케첩, 껌, 페인트와 케케묵은 오염 자국들로 고민인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게 되었다. 그분은 자신의 성패를 가름했던 중요한 결정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내가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전에 내가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존중하자.” 맞다! 여기에 성공과 행복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각 분야에 재능 있고 소질을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천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 중에 알기 쉽게 가르치는 교사를 포함해서 자녀 양육과 직장 생활을 동시에 아주 잘 해내는 수퍼맘과 잡일도 마다않고 무엇이든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부지런한 아빠 등등 가족과 주위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는 분들이 있기에 우리 가정과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잘한다고 해서 항상 행복과 기쁨, 성공과 바로 직결되는 것도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어느 순간부터 ‘비교 중독증’에 빠지기 시작하면, 삶이 고통스럽고 불행해지기 쉽다. 말하자면,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향 비교의 일상화는 정말 부질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강준만 교수는 그의 책, 『생각과 착각: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5』(2016)에서 “많은 연구 조사가 행복한 사람들은 남들과 비교를 덜 하고, 내적 기준에 따라 만족감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바로 그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아주 초월하고 격리된 생활을 하지 않는 한 경쟁과 갈등으로 내모는 시대적 삶에서 ‘비교하는 동물’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항상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비하하기보다는 겸손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뿌듯하고 벅찬 감정이 솟아오를 수 있다. 자녀문제도 아이들이 성공하고 잘 살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기만적으로 자신과 남을 속여가며 비윤리적으로 살지 않기를 바란다면, 매사에 이웃의 자녀와 비교하고 질책하지 말자. 자녀가 성적이나 친구 문제로 고민이 있으면, 일단은 무조건 잘 들어준다. 그리고 나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니?” 혹은 “네가 정말로 하고 싶고 힘나는 일이 무엇이니?”라고 진심으로 물어봐준다. 중요한 것은 이때 성인의 결정을 강요하거나 자녀와 ‘힘겨루기’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싫어도 부모가 원하면 따르고 마는 경향이 매우 짙기 때문이다.

자녀를 부모나 자녀의 자랑거리로 삼으려다가, 결국 그들을 ‘비교의 희생자’로 만들고 불행한 삶으로 내모는 꼴이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