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행복하고 즐거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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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새롭게 알게 된 단어가 있다.  그것은  “빠떼루” 라는 단어이다. 1996년도  아틀란타 올림픽 경기장에서 해설자가 외쳤던 말이다. 당시엔 이게 뭔 말인지 잘 몰랐다. 선수에게 힘을 내라는 말인지, 아니면 경기중에 나타내는 기술의 일종인지 ?  그런데 며칠전에 어느 책을 읽다가 파테르(Parterre) 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 이걸 경상도 분이 올림픽 중계시에 강한 발음으로 빠떼루라 했던 것이다. 프랑스 단어로 par(~에서) Terre(바닥)이란 뜻이 있어서,  “바닥에서“라는 의미가 있다.  레슬링 경기에서 한 선수가 바닥에 밀착되어 있으면 공격 선수가 그 선수를 뒤집는걸 파테르라 한다던가. 그런데 이럴 경우 강한 의지력을 발휘해서 역경을 이겨내는 것을 “파테르 정신” 이라고 한단다.  파테르 정신은 견디고 버터야 하는 걸 의미하는게 아닌가 싶다.  레슬링 경기에서 소극적인 경기에 임한 선수에게 주는 심판의 벌칙의 일종인 파테르가 빠떼루로 된 것이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인생에서 자기만의 생각과 아집으로 인해서 세상을 일찍이 등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자기의 건강만 믿고 있다가, 몸 속이 잘못되어서 60평생 힘들게 일구어 놓은 에덴 동산에는 발 한번 딛어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 일어 날 수가 있다. 더구나 노년이 되면 자고 일어나 봐야 안다는 말도 있다.  그 만큼 노년은 위태위태한 상황에 놓여 있게 된다. 그러나 위태하다해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뭔가를 해야 한다면 돈과 건강이란 걸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돈이란 적은 돈을 말하며, 건강이라 함은 혼자서 걸을 수 있을 정도를 말 함이다.

인생은 모든 연령대에 속한 재미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름의 행복함이 있다는 말이다. 20대는 그들만의 즐거움이 있고, 70대도 나름데로의 즐거움이 있다. 노년에는 사회의 변화에 적극적인 관심이 있거나, 아니면 무관심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 사회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며 살기에는 두뇌가 안 따라 주는 경우가 생긴다. 적당히 사회변화를 이해하고, 적응을 하는 사람이 보기 좋다.  올바른 주관의식도 없으면서  남의 말만 듣고, 그것이 자기 의견 인 양 떠드는 노인들을  보면 안타깝다.  여기에서  더 나가서 자기 고집을 합리화 시켜 놓고는 그것이 보수주의라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보수주의(保守主義, Conservatism)는 오랜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는 전통가치를 지키며, 기존 사회체제를 안정적으로 발전 시켜 나가려는 정치 이념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사카고애 오래 산 분들을 가르켜서 보수주의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잘 못 된 것이다. 그런 분들의 마음 속은 쇄국정책 ( 鎖國政策 )을 주장 했던 대원군의 마음과 같지 않나 싶다.  60년대 말에 미국에 오신 분이 하시는 말씀 하나를 소개 한다.  나이 80이 넘었는데, 미국 살면서 한국신문도 안 보았고, 그렇다고 미국신문을 본적도 없단다.  그렇게 생활한 자신이 딱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노년이 되면 갖게 되는 강압적 권위주의가 자신도 모르게 생겨 난다.  특히나 고정관념과 직선적인 사고력을 갖게 되는게 문제이다. 어느 틀안에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산다. 은퇴 후에 상실감이  커져 가면서, 있는척, 아는척, 잘난 척, 점잖은 척, 하며 허풍도 챙기는 노년들도 보게 된다.  타인의 경험도 듣는 아량이 필요하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자신을 보게되는 거울이기에 하는 말이다.

보통 평범한 것은 괴로움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노년의 삶에서 괴로움이 없다는 것은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즐겁다. 나 만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