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뷰티풀 마인드 (A Beautiful Mind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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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kim

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이 자신없고 서툴러서 주로 혼자 놀았습니다.

그래도 외롭지는 않았는데, 내 안에 또 다른 ‘나’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나’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내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과 생각의 바다를 떠다니며 모험을 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좋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현실을 외면한 채, 꿈과 몽상에 빠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 안에 또 다른 몇 명의’나’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내 속의 ‘나’가 지나치게 힘이 세져서 현실의 나를 지배한다면 그때부터 삶의 균형이 깨어지고 고난이 시작됩니다.

여기  ‘뉴턴’이나 ‘다윈’에 비교되는 천재이지만 평생 자기 안의 또 다른 ‘나’와의 싸움인 정신 분열병을 앓으며 노벨상을 수상한 고귀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1940년 후반,  뛰어난 수학도인 ‘죤 내쉬’가 프린스턴 대학원에 입학합니다. 죤은 기숙사 독방을 신청했는데, 방에는 ‘챨스’라는 룸메이트가 먼저 와 있습니다. 활달한 챨스는 자부심이 강하고 대인관계에 서툰 죤에게 친절하게 스스럼없이 대하고 곧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죤은 동료들이 바에서 금발 미녀를 놓고 벌이는 심리적인 역학 관계에서 힌트를 얻어, 상대방의 행동이나 대응을 미리 예상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내쉬 균형 이론'(Nash Equilibrium)을 발표하고 학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 성과로 젊은 나이에 MIT교수로 임명됩니다. MIT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죤은 대학원생 ‘알리시아’를 알게 됩니다. 그녀는 죤의 천재성, 고독함, 플라토닉한 사랑에 끌리고 둘은 결혼합니다. 죤은 프린스턴을 방문해서 챨스와 재회하고 그의 귀여운 조카 ‘마르시’도 만납니다. 그 즈음 국무부 비밀요원인 ‘파쳐’가 접근합니다. 파쳐는 죤에게 러시아의 암호를 해독하는 특별 임무를 맡깁니다. 또 잡지와 신문에서 러시아의 암호  패턴을 분석하고 보고하도록 명합니다. 죤은 성실하게 스파이 임무를 수행하다가 러시아 요원들의 추격을 당하고 신변의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죤이 왠지 안절부절못하고 불안정한 행동을 계속하자  알리시아는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킵니다.

알리시아는 죤이 파쳐에게 보냈던 ‘극비’라고 쓴 수십통의 보고서 메일이 뜯기지도 않은 채 그대로 우편함에 쌓여있는 것도 발견합니다. 파쳐, 코드 해독, 비밀 임무 이 모든 것이 죤의 환상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죤은 고통스러운 인슐린 충격 요법을 받고 정신병 약도 계속 복용할 것을 약속하고 퇴원합니다. 하지만 약이 사고를 방해하고 학자로서의 능력을 둔화시키자 몰래 약 복용을 중단합니다.

어느 날 죤은 아들을 목욕시키다가 다시 산란해진 정신 상태로 집을 빠져 나가 전에 암호를 해독하던 비밀 장소로 갑니다.

알리시아가 목욕탕으로 달려가 거의 익사할 뻔 한 아들을 구합니다. 절망한 아내가 떠나려고 하자 죤은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인정합니다. 친구 챨스와 자신이 그렇게 귀여워하던 마르시가 환상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수년이 흘렀는 데도 어린 마르시가 전혀 자라지 않았던 것입니다. 죤과 알리시아는 약 복용없이 정신 분열병과 싸우기로 결정합니다. 죤은 오랫동안 그의 곁에 있었던 파쳐, 찰스, 마르시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 든 죤은 프린스턴 학장인 동창의 도움으로 대학 도서관에서 연구를 계속합니다. 여전히 정신 분열병이 그를 괴롭히지만, 죤은 아내와 함께 학자로서의 삶도 병행합니다. 그리고 다시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됩니다.

1994년,  죤이 ‘내쉬 균형이론’을 발표한 지 45년이 흐른 뒤에 드디어 노벨경제학상을 받습니다.

수학에 기반한 게임 이론으로 경제학 발전에 이바지한 천재 수학자 죤 내쉬의 전기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불과 20대 초반에 균형 이론을 발표한 죤 내쉬는 아내가 임신한 무렵에 시작된 정신 분열증으로 평생을 시달립니다. 영화에서 내쉬의 정신병은 기괴하고 흥미롭고 웃기고 슬픕니다. 실제로 내쉬는 수년동안 캠퍼스를 홀로 배회하거나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끊임없이 신문 잡지를 뒤척였다고 합니다.  곱추의 등처럼 정신에 딱 달라붙어 도저히 치유되지 않는 병을 가지고도 포기하지 않고 삶을 계속하는 내쉬  부부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명석한 젊은 수학자에서 정신분열증과 함께 서서히 나이를 먹어가는 내쉬의 일생이 가슴이 묵직하게 아프고 경이롭습니다.

‘글래디에이터’의 러셀 크로우가 강렬하고 섬세하게 죤 내쉬를 연기하고 음악과 촬영이 훌륭합니다.

2002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