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빈발해도 미 총기폭력 연구예산 ‘쥐꼬리’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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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텍사스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 현장<로이터>

미국에서 다수의 무고한 희생자를 낳은 총기 난사 사건이 빈발하는데도 총기 폭력의 원인과 대책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집계한 사망원인별 연구 예산 자료를 근거로 총기 폭력에 관한 연구가 저조한 이유를 예산에서 찾을 수 있다고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4일 텍사스주 유밸디의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19명 등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총기 폭력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정책 결정에 참고할 연구 자료는 빈약하며, 그 주요 원인은 예산 문제라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총기 폭력 연구에 지출한 연구 예산은 연평균 200만 달러에 그친다. 이런 금액은 소수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다 소진될 수준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이처럼 연구 예산이 부족한 데에는 ‘디키 개정안’으로 일컬어지는 CDC 예산 관련법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전미총기협회(NRA)의 적극적인 로비 속에서 통과된 개정법은 CDC가 부상을 예방하고 통제하는 데 연구 예산을 쓸 수 있지만 총기 규제를 ‘촉진’ 내지 ‘옹호’하는 데 지출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이런 규제는 총기 폭력에 대한 연구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CDC의 관련 연구를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2012년 26명의 사망자를 낸 코네티컷주(州)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과 2018년 17명이 숨진 플로리다주 마조리 스톤맨 더글라스 고교 총기난사 사건 등 참혹한 대형 사건이 터졌는데도 2020년까지 CDC의 총기 관련 연구 예산은 연간 1천만 달러(약 124억원)를 넘은 적이 없다.
의회는 플로리다주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디키 개정안에 추가 조항을 넣었다. 이 법에 저촉되지 않고도 CDC가 총기 폭력에 관한 연구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내용이다.이에 따라 지난해 CDC가 총기 폭력 연구에 지출한 예산은 1천900만 달러까지 늘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알츠하이머와 약물 중독, 암, 독감, 자살, 심폐질환 등 다른 사망 원인별 예방 연구에 지출된 연구 예산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지난해 사망 건수 1건당 연간 연구비용으로 따지면 총기 폭력 1건에 420달러의 연구예산이 지급됐지만 약물 중독에는 이보다 38배 많은 1만6천달러가 지급됐다. 사망 1건당 연구 예산이 총기 폭력보다 적은 건 20가지 주요 사망원인 가운데 낙상(落傷)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총기 폭력 관련 연구 예산은 증가세를 보이겠지만 총기 범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비롯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줄 만한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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