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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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하나님이 당신을 예정 가운데 선택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당신에게 참된 믿음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구원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구원의 확신을 무슨 근거로 가질 수 있나?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성화이다. 하나님의 선택, 소명, 중생, 그리고 회심은 순간이다. 순간은 삼각형의 한 꼭짓점과 같다. 그런데 꼭짓점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 삼각형이 있기에 꼭짓점이 존재한다. 이와 유사하다. 성화가 없다면 선택도 소명도 중생도 회심도 칭의도 양자도 존재할 수 없다. 이 말은 물론 성화 되기 때문에 중생과 회심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중생과 회심은 성화보다 선행한다. 그런데 성화는 이것들을 증명한다. 따라서 이들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성화는 말 그대로 거룩하게 되어간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부른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고 회개하며 예수 믿게 되어 믿음이 자라나서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해진다. 성화 될 때에 죄의 권세가 파괴되고, 정욕들이 약해져 줄어들고 참되고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된다. 중생이나 회심 사역이 성령의 사역이듯이 성화도 또한 성령의 사역이다. 성화는 완전을 향하여 계속해서 노력하고 나아가는 것이지 거룩에 도달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성화가 완성된 상태를 가리켜 영화라고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부활이 이루어진 후에야 발생한다. 금생에서는 성화를 완전히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성화를 완전히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완전주의는 성경의 가르침과 위배된다. 심지어 요한일서 1:8, 10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한다. 죄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라는 뜻이다. 사실 사람이 성화 될수록 자기의 죄를 더욱 자세히 본다. 그래서 성화 되면 될수록 자신은 성화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밤에 산길을 간다고 생각해 보라. 그 사람은 먼지와 진흙과 낙엽과 동물의 배설물과 거미줄 등으로 인해 온몸이 더러워졌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기에 괜찮을 거로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서 아침이 되어 태양이 떠오르면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지 이제 발견한다. 영적 원리도 마찬가지다. 어두움 가운데 있으면 자신의 죄를 볼 수 없다.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점점 더 진리 가운데로 가면 갈수록 양심은 그만큼 더욱더 날카로워지고 아주 작은 죄까지도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의 시처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고백이 나온다.

거듭난 사람은 금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두 가지의 법 가운데서 전쟁을 치르면서 산다. 하나는 성령의 법, 곧 하나님의 법이요, 또 하나는 육신의 법, 곧 사탄 마귀의 법이다. 이 두 개 법 가운데서 전쟁하며 살아가지만, 육신의 법이 왕 노릇하지 않는다. 왕 노릇 한다는 것은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죄에 의해 지배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럽은 나치 독일에 의해서 지배를 받았다. 연합군이 독일에 대항해서 싸우기는 했지만, 여전히 독일이 전쟁을 지배했다. 그러다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면서부터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이 지배했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이 곧바로 항복하고 전쟁이 끝나지는 않았다. 연합군을 계속 괴롭혔지만, 전쟁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거듭나서 성화 되는 사람의 경우가 이와 같다. 아직 죄의 잔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죄가 중생한 사람의 삶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3장 2항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성화는 온 인격을 통하여 되는 것이지만 금생에서는 불완전하다. 그래서 모든 부분에 얼마간의 부패한 잔재들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로 인하여 계속적이고 화해될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나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슬러 싸운다.” 계속해서 3항에서 가르친다. “그 전쟁에서, 그 남아 있는 부패한 부분이 당분간은 상당히 우세할지 모르나 그리스도의 성결케 하는 영으로부터 힘을 계속 공급받음으로 중생한 부분이 이기게 되며 그리하여 성도들은 은혜 안에서 자라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