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만으로부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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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사무엘하 24장을 보면 하나님의 허락하에 사탄이 다윗을 시험하는 장면을 만납니다. 인구 조사를 하도록 다윗의 마음을 격동시킨 겁니다. 사탄은 믿음의 사람들을 망하게 하려고 시험하고, 반면에 하나님께선 그들의 믿음을 단련하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다윗의 어떤 면을 다루고자 이런 시험을 허락하신 걸까요? 한 가지만 살펴볼까요?

영적 교만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평생을 바쳐 세워 놓은 나라의 규모를 자랑하고 싶은 겁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고 묵상하다 보면 다윗의 교만을 엿볼 수 있는 단서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첫번째 단서는 인구 조사를 명령하는 다윗의 입에서 하나님이란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질 않았다는 겁니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동기가 되어 인구 조사를 시작했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언급했어야 합니다. 두번째 단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충언한 요압의 말을 단번에 잘라버렸다는 겁니다. 마지막 단서는 인구 조사가 끝나자마자 회개한 다윗의 모습입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나라가 강건해지자 자기도 모르게 교만이 싹 텄던 것 같습니다. 영리한 사탄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는 겁니다.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거짓 선지자 850명과 싸워 승리한 엘리야는흥분했을 겁니다. 이번의 승리로 왕이 회개하고 돌아올 거라는 기대감도 컸을 겁니다. 그런데 왕의 아내로부터 ‘너도 네가 죽인 선지자들처럼 내일 죽게 될 것’이라는 전갈을 받게 됩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그날로 국경을 넘어 광야까지 도망가 숨어버립니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이 정도면 됐으니 이젠 죽여달라고 간청합니다. 이 말에는 섭섭함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이렇게까지 일했는데, 결과가 고작 이겁니까.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라는 푸념이 담겨 있는 겁니다. 아무리 섭섭해도 하나님의 선지자는 이런 기도를 드려선 안 됩니다. 이 정도면 됐다니요, 엘리야가 얼마나 사역을 해야 하는지는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인 겁니다. 죽여달라니요, 사람의 생명 또한 하나님 손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겁니다. 엘리야는 자기 힘으로 뭔가를 이뤄냈다는 생각 때문에 어느 새 교만해지고 만 겁니다.

믿음의 영웅이라고 불리우는 다윗과 엘리야 같은 사람들도 이렇게 교만에 빠질 때가 있는 겁니다.

교만의 원인은 뭘까요?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잊어버리는 겁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한 종이 밭에서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종을 본 주인은 밥상을 차리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곁에서 수종들라고 명합니다. 아무리 지쳐있고 허기졌다 해도 종은 주인의 명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이 비유 후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을 다 행한 후에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오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선 우주와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그 섭리 안에서 살아가는 자라는 사실, 하나님께선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그 은혜로 살아가는 자라는 사실, 하나님께선 말씀을 주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자라는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실히 기억한다면…이런 삶은 항상 교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겁니다.